대빈창을 아시는가

구라탕 터놓는 날

대빈창 2015. 11. 18. 06:08

 

 

 

할멈 둘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

살얼음 갯바위 틈새 / 얼어죽은 한 마리 주꾸미라도 주우려

갯바위를 걸어서 / 굴바구니 들고 갯티에 가는

생계 줍는 아침

 

 

서해의 섬들을 시의 영토에 편입시켜 가난하고 외로운 섬사람들의 삶을 노래한 시인 이세기의 「생계 줍는 아침」의 전문입니다. 여기서 ‘갯티’가 주문도 대빈창 해변의 ‘구라탕’입니다. 굴밭을 말합니다. 오늘은 구라탕을 터놓는 날입니다. 서도(西島)의 행정구역은 여섯 군데입니다. 주문도·볼음도 둘, 아차도·말도 한 곳. 행정구역별로 굴밭을 가꾸고 지키며 살아갑니다. 주문2리의 자연부락은 대빈창·느리·꽃동네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문2리의 공동 굴밭이 ‘구라탕’입니다. 주민들은 오늘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굴밭에 들어가 굴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구라탕은 볼음도와 아차도가 가장 가까운 주문도의 돌밭 해변입니다. 이미지에서 보듯 갯벌을 어린애 머리통만한 돌들이 뒤덮었습니다. 돌 표면의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굴 패각입니다. 정오 무렵.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이 찬 겨울비를 흩뿌렸습니다. 대빈창 할머니 열댓분이 첫 굴쪼기에 나섰습니다. 죄(굴을 쪼는 도구)로 연신 굴껍질을 쪼아 굴바구니에 담습니다. 일이 얼마나 손에 익었는지 굴쩌귀(죄에 찍힌 굴껍질)하나 생굴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노련한 이가 하루 네 시간 노동에 두 관, 초짜도 굴 한관을 쪼을 수 있습니다. 가격은 한 관에 6만원입니다. 2kg짜리 새우젓통 반관이 3만원입니다.  저는 사진기를 들이대며 할머니들에게 아는 체를 합니다.

“올 굴 농사는 어떠세요.”

“좋지. 굴이 아주 탱글탱글혀.”

섬 어르신들은 생계를 바다에서 줍습니다. 봄·여름·가을은 뻘에서 상합을, 겨울은 구라탕의 굴이 생계 수단입니다. 겨울 한철 구라탕의 굴쪼기는 섬 할머니들의 쏠쏠한 수입원입니다. 구라탕의 지혜. 굴 채취에 관한 섬 주민들의 공동소유 관념은 섬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필요조건입니다. 저는 굴 한관을 부탁합니다. 섬 생활이 남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할머니들은 인정이 넉넉하고 손이 크십니다. 반관짜리 투명 플라스틱 통에 물기 없이 강굴로 꾹꾹 눌러 담습니다. 종자기 가득 굴이 남습니다. 저녁 밥상에 생굴과 양념간장을 올려야겠습니다.

 

p.s 주문도 토배기에 의하면 발우지 → 바라지 처럼, 굴바탕 → 구라탕 으로 어원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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