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나의 산책길

대빈창 2015. 11. 9. 07:00

 

 

산책길에 오릅니다. 다랑구지 들녘을 가르는 대빈창 해변 가는 길을 버리고 뒷울안을 감싸 도는 산길을 택합니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봉구산 등산로와 산자락을 따라가는 옛길입니다. 고구마밭 첫머리 용틀임한 나이 먹은 소나무가 반겨줍니다. 나의 산책길은 봉구산자락 옛길을 지나 해변 제방길로 이어집니다. 섬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이리저리 휘어지며 통과하는 길입니다. 섬 주민들의 경제활동 영역입니다. 어제는 입동이었습니다. 왼쪽 이미지의 논밭은 텅 비었습니다. 봉구산 자락과 여맥을 일군 밭에 고추, 고구마, 참깨, 들깨, 서리태(콩), 뚱딴지(돼지감자), 땅콩이 심겼다가 거두어졌고, 김장철을 맞아 배추, 무, 쪽파, 대파의 수확도 끝나갑니다. 푸른 하늘아래 논밭 끝머리 낮은 구릉의 잡목 숲 음영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갑니다. 구릉 너머는 바다로 오른쪽 이미지의 해변 제방길입니다. 극심한 가뭄을 이겨내고 간신히 모내기를 마쳤는데, 어느새 논바닥에 그루터기만 남았습니다.

제방은 낮은 구릉을 뒤덮은 해송 숲을 왼손에, 백사장에 흩어지는 잔물결이 오른손을 맞잡는 길입니다. 가난한 시절의 유물인 사석을 쌓은 제방이 없었다면 대빈창 해변은 분명 태안 신두리 사구를 닮았을 것입니다. 더위가 가시며 찾는 이가 없자, 제방 가로등도 할 일을 잊었습니다. 모래밭과 갯벌이 만나는 지점에 인공구조물이 설치되었습니다. 검은 자루에 모래를 담아 길게 늘여 놓았습니다. 제방을 때린 파도가 백사장의 모래를 쓸어가는 것을 막는 방책입니다. 제방을 부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아야겠습니다. 섬 주민들 이해타산이 걸린 문제로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입니다.

극심한 가뭄은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바다 생물과 갯것도 흉어기를 맞았습니다. 해안가 뻘그물은 개점휴업상태입니다. 흔한 망둥이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작년 화수분처럼 뽑아 올리던 대빈창 갯벌의 상합은 어디로 갔을까요? 제방길이 끝나는 지점. 멀리 바위벼랑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옵니다. 꼬마토끼 토진이가 삶의 터전을 꾸린 삼태기 지형 보금자리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눈표범 꼬리를 가진 길냥이를 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흑염소 가족 3代는 감나무집 형의 손에 이끌려 우리 안에 넣어졌습니다. 왕복 1시간여 거리. 두 번째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기특한 토진이가 눈에 밟힙니다. 어둠의 장막이 끈질기게 제 자리를 버티고 있어, 먼동이 봉구산 너머 몸을 움추린 시각. 나는 낡은 등산화 끈을 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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