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번 강화도와 서도 군도(群島)를 오가는 삼보12호는 볼음도, 아차도에 기항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문도 느리 선창에 여객을 부립니다. 주문도와 아차도가 마주보는 내해(內海)에 정박합니다. 배에서 내리면 뱃사람들이 어구를 손질하는 넓은 물량장이 선창에 잇대었습니다. 주문도 매표소·선양식당(1층 식당, 2층 민박)·여인숙 간판이 붙은 가정집·인천해안경비안전서 서도대행신고소·한 달 전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구멍가게. 길가 공터를 일군 텃밭·모퉁이 집·하얀쪽배 펜션이 야산 절개지에 등을 바싹 기댔습니다. 폭 좁은 아스팔트길이 해안을 따라 이어지고, 바다에 접한 월파벽이 길을 따라 갑니다. 유두·백중사리 때 월파벽에 바닷물이 찰랑거립니다.
“벼 알 여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어르신네 말씀처럼 가을볕이 짜글짜글합니다. 대기를 꿰뚫어 내려 꽂이는 햇살이 표창같이 날카롭습니다. 오늘도 녀석들은 우리를 탈출해 해조음에 귀를 열고, 폭풍섭식에 딴생각이 없습니다. 녀석들의 주인은 느리선창에서 대빈창 해변 가는 길모퉁이 집입니다. 녀석들의 닉네임을 지었습니다. 이미지의 왼쪽 눈 주위와 귀만 까맣고, 온 몸이 흰 녀석은 털북숭이입니다. 녀석의 얼굴 털은 유난히 깁니다. 오른쪽 눈 주위와 목덜미와 귀가 까맣고, 하반신이 얼룩무늬인 녀석은 절름발이입니다. 녀석은 다행히 로드킬에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미지에서 보듯 오른 뒷발을 심하게 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녀석들은 오늘도 주인이 알 수 없는 탈출구를 통해 선창길에 나와 자연식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절개지 옹벽과 아스팔트 선창길 사이 길섶의 야생초가 녀석들의 먹이창고 입니다. 털북숭이가 오른 앞발로 가지를 끌어내려 입으로 뜯는 풀은 까마중입니다. 까맣게 익은 열매가 중머리를 닮았다고 이름 붙였습니다. 누구나 단맛이 나는 까마중을 따먹으며 시골 아이들은 자랐습니다. 욕심을 부려 손과 입이 까맣게 물들어 서로의 얼굴을 손짓하며 웃었던 추억어린 풀입니다. 한방에서 까마중은 피로회복 효과가 있습니다. 밤새 인적 없는 선창가 가로등 밑에서 뛰어 놀던 털북숭이가 바카스를 마시는 기분으로 잎사귀를 뜯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절름발이가 매달린 풀은 환삼덩굴입니다. 환삼덩굴은 줄기가 질기고 잔가시가 많아 길손의 종아리에 긁힌 상처를 냅니다. 하지만 토끼는 억센 줄기와 잎을 잘도 먹습니다. 환삼덩굴은 어혈을 없애고 몸 안에 있는 독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절름발이는 스스로 제 몸을 치료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녀석들을 찍으려 휴대폰을 들이대자, 주먹 만한 개가 앙칼지게 짖어대며 따라 다닙니다. 녀석은 두 달 전 저 세상으로 가신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키우던 놈이었습니다. 주인 잃은 녀석을 모퉁이 집에서 거두었습니다. 녀석은 지금 제 밥값을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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