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한(忙中閑)의 뜻은 ‘바쁜 가운데의 한가한 틈’을 말한다. 어머니 인생의 망중한은 과연 있었기나 한 것일까. 어머니가 병원 10층 복도에서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셨다. 7월 1일 어머니가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 아침과 점심을 밥통에 앉히고, 앉은뱅이 밥상에 냉장고의 반찬을 꺼내 나의 출근 전 밥상을 차렸다.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면 어머니는 항상 누워 계셨다.
“어머니. 왜 매일 누워만 계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나이 먹어서 그런지. 움적거리는 게 귀찮다. 나아지겠지.”
누이와 동행하여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면서 나의 무신경에 화가 솟구쳤다. 어머니의 고통에 이렇게 무딜 수가 있다니. 어머니의 건강에 조금 만 신경을 썼더라도 어머니가 앉은뱅이 생활을 하셨다는 것을 눈치챘을 텐데. 몇 년 전부터 어머니는 싱크대 설거지를 하시면서 몸의 중심을 못 잡으시고 삐딱한 자세로 빈 그릇을 부셨다. 매일 내 방 책장 틈의 먼지를 물걸레질하시던 어머니. 요즘 들어 책등을 보인 채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이 엉클어져 있었다.
“할머니도 참 용하시네요. 무지 아프셨을 텐데.”
담당 의사가 혀를 끌끌 찼다. 나는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어머니의 허리, 대퇴부, 무릎, 발목의 통증은 6 ~ 7년 묵은 병이었다. 섬에 사는 사정을 얘기하고 당일 병원에 입원하셨다. 다행히 누이동생이 어머니 곁을 지켰다.
7월 7일, 어머니의 수술일. 어머니의 병명은 척추판협착증이었다. 아침 8시 30분 수술실에 들어가셔서, 오후 3시 30분까지 이어지는 큰 수술을 받으셨다. 회복실에서 두 시간을 지내시고 병실로 올라오신 시간은 5시 30분.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포와 고통 속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셨다. 어머니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의료기가 여기저기 매달렸다. 어머니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온 가족이 매달려 어머니 몸을 주물렀다.
텃밭은 온통 쇠비름밭으로 탈바꿈했다. 9호 태풍 ‘찬홈’이 서해를 거슬러 올라왔다. 키 큰 찰옥수수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고추밭은 붉은 고추, 애 고추 할 것 없이 탄저병으로 맥없이 땅바닥에 뒹굴었다. 어머니는 두 번 지주 줄을 감으셨다. 나는 세 번째 지주줄을 말짱에 감았다. 뒷울안 계단식 화단은 강아지풀이 지천이었다. 보라, 파랑 수국꽃이 풀밭 속에서 간신히 얼굴을 내밀었다. 고라니가 새끼를 칠 지경이었다. 텃밭의 들깨모는 그대로였다. 모내기를 해야 가을에 기름이라도 짤 텐데. 주말에 작은 형이 섬을 찾았다. 오후 내내 형제는 텃밭의 김매기에 매달렸다. 진돌이는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는 내내 맛없는 맨 사료만 줄창 먹었다. 나의 성심은 가끔 시원한 찬물을 갈아줄 뿐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병원을 찾아 누이와 병수발을 교대했다. 메르스로 인해 병원은 한산했다. 병원을 드나들 적마다 의료요원들이 체온계를 머리에 갖다 대었다.
7월 22일. 전날 저녁 실밥을 풀고 어머니는 퇴원을 서두르셨다. 어머니는 허리보호대를 찬 채 섬으로 향했다.
“진돌이가 보고 싶구나.”
지하1층 의료기 가게에서 알루미늄 워커, 이동식 좌변기, 사발지팡이를 샀다. 나는 이케아 광명점에 들러 식탁과 나무의자를 구입했다. 어머니의 거동은 완전치 못했다. 병원에 계시면서 어머니의 통증을 종합적으로 진찰 받았다. 무릎 연골이 닳아 어머니의 무릎, 발목 통증은 그대로였다. 의사는 3개월 뒤 어머니의 인공 무릎관절 수술을 권했다. 어머니가 집안에서 보행 보조기를 편하게 다루기 위해 방문턱을 없애는 집수리에 들어갔다. 어머니와 누이, 나는 옛 김포집이 있던 한들고개의 〈陽村〉집에서 점심으로 도가니탕을 먹었다.
어머니는 내년 구정을 세우고 인공관절수술을 받으실 것이다. 어머니는 염려와 달리 고통을 잘 이겨내셨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의 병원 입원은 어쩌면 인생의 망중한이신지 모르겠다. 내년 봄 어머니가 텃밭에서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셨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12호 태풍 할롤라가 북상중이다.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연일 반가운 단비가 퍼부었다. 어머니 무덤이 떠내려간다고 청개구리들이 목청껏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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