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길에 접어들었건만, 다른 때와 달리 연구소 마당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전 같으면 멀리서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요란하게 울어대야 하는데, 그날은 너무 조용했습니다.’
소설가 최성각의 생태소설 『거위, 맞다와 무답이』에서 춘천 퇴골 풀꽃평화연구소 마당을 삶터로, 2년여 喜怒哀樂을 함께한 암수 거위 ‘맞다’와 ‘무답’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순간입니다. 암수 거위는 수리부엉이에게 일을 당했습니다.
대빈창 해변 제방을 따라 바위벼랑으로 다가서면 토끼들이 하나 둘 눈에 뜨입니다. 수놈 토돌이는 어느새 어른이 다 되었습니다. 큰 덩치에 걸맞게 식탐이 대단합니다. 활동 영역이 넓은 녀석은 가장 먼저 눈에 뜨입니다. 녀석은 호기심도 강합니다. 손바닥을 펴서 내밀면 코를 큼! 큼! 대며 다가왔다가 팔짝 뛰며 되돌아가 폭풍섭식에 여념이 없습니다. 얼마쯤 가자, 애완토끼 토진이가 황토를 헤집고 있습니다. 한 겨울을 야생에서 난 녀석은 덩치는 작지만 여유가 몸에 배었습니다. 벼랑아래 풀밭 저 멀리 토순이가 눈에 뜨입니다.
위 이미지가 암놈 토순이입니다. 토끼도 암놈이 체형이 예쁜지 모릅니다. 토순이는 날렵하고 매끈한 몸매를 자랑합니다. 녀석의 한 달 전 모습입니다. 땅바닥에 드리운 아까시 잎을 물고 있습니다. 며칠 토순이가 보이지않자 새끼를 낳으러 사람 눈에 뜨이지 않는 산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걱정은 자꾸 깊어갑니다. 녀석이 산책에서 보이지 않은지 보름이 다 되었습니다.
역진화의 도정에 나선 녀석에게 하루하루의 삶은 위험의 연속인지 모릅니다. 까치는 곧게 자란 붉은 고추만 골라 씨를 파먹고, 까마귀는 닭장의 허술한 틈을 들락거리며 계란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먹어 농부의 노여움을 사고 있습니다.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가 허리 높이로 자란 벼포기 사이로 겅중겅중 뛰어 달아납니다. 까치와 까마귀의 환경적응력이 대단합니다. 토순이의 야생의 삶 3개월은 시간이 너무 짧았는지 모릅니다.
유두사리의 대빈창 해변은 물결이 거칠어졌습니다. 밀물 때 파도가 제방을 넘쳐 토끼들의 활동영역까지 바닷물이 흥건합니다. 짠물을 뒤집어 쓴 아까시잎이 불에 덴 것처럼 시들시들 말라갑니다. 행락지 대빈창 해변을 찾은 도회인들의 텐트가 솔밭에 가득합니다. 어쩔 수없이 바위벼랑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잦습니다. 주문도의 자연은 건강합니다. 솔개, 부엉이, 소쩍새, 황조롱이, 족제비 등 토끼의 천적은 부지기수입니다. 토순이는 아직 살아 있을까요. 녀석이 새끼들을 데리고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토순이가 황토를 앞발로 제게 헤집고, 배를 깔고 길게 엎드려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창에 토끼가 나타났다. (0) | 2015.09.14 |
---|---|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4 (0) | 2015.09.07 |
어머니의 망중한 (0) | 2015.07.27 |
저수지의 치욕 (0) | 2015.07.06 |
하지의 못자리 (0) | 2015.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