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 선창에서 대빈창 해변으로 가는 길모퉁이 집 텃밭의 작물은 뼈대만 남았습니다. 애완용 토끼 두 마리가 우리를 나와 마구 잎사귀를 뜯어 먹었습니다. 주인네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놈들이 어디로 나오는 지 통 모르겠어.”
털북숭이 녀석들은 밤이면 가로등이 밝혀진 선창가에서 제멋대로 뛰어놀기 일쑤입니다. 한 녀석은 사고라도 났는지 오른 뒷발을 절름거립니다. 오늘도 우리를 탈출해 길가의 풀을 뜯는 토끼를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네 아낙네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대빈창 해변 바위벼랑 공터에 강아지 네 마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요즘, 토끼 한 마리가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벌써 한 달이 다 되었어요. 아마! 솔개가 채 간 것 같아요” 말을 하면서도 내심으로 토순이가 산 속으로 들어가 새끼를 낳아 기를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저수지 끝머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내려다보이는 팔각정에서 만난 볼음도 형이 토끼에 대해 일가견을 피력했습니다.
“토끼는 산 속에 굴을 파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기간이 한 달 이상이야.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 봐.”
“토끼는 진드기 때문에 죽은 것 같아요. 아주 더운 날 녀석이 땅바닥에 배를 깔고 있어, 손으로 쓰다듬으니까 가만히 있더라고요. 근데 온 몸이 진드기 투성이예요.” 저의 희망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지난 일이 떠올랐습니다. 대빈창 해변에서 마주 친 상합 캐는 아낙네가 말했습니다.
“아휴, 토끼 몸에 진드기가 말도 못해요. 약 좀 뿌릴까요.”
“야생에 적응하려면, 녀석들이 이겨내는 수밖에 없어요. 그냥 놔두는 것이 낳을지도 몰라요”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토진이와 토돌이에게 해충기피제를 들고 다가섰습니다. 칙 ~ ~ 칙 ~ ~
고약해 냄새에 녀석들이 줄행랑을 놓습니다. 내가 다가서면 녀석들은 지레 놀라 산 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저의 진드기 구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요즘 언론에서 살인진드기라고 호들갑 떠는 ‘ 작은 참소진드기’ 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주문도 풀밭은 진드기 천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진드기는 야생동물의 몸에 붙어 흡혈합니다. 흡혈한 피로 몸이 손톱만큼 부풀어야 녀석은 스스로 떨어져 나갑니다. 식탁에서 밥을 드시던 어머니가 저의 말을 전해 듣고 혀를 쯔! 쯔! 차셨습니다.
“에구 불쌍한 것, 얼마나 가렵고 괴로웠을까”
역진화 도정은 토순이에게 무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야생에서 한 철을 지낸 토진이의 몸은 깨끗합니다. 토돌이는 큰 덩치로 진드기의 흡혈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녀석의 목 뒷덜미에 진드기가 터를 잡고 있지만 녀석의 천방지축은 오히려 다른 근심을 저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위 이미지 토돌이의 위치는 대빈창 해변 야영장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바위벼랑에서 0.5㎞ 떨어진 야영장에 녀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해당화가 심겨진 주차장 화단에서 녀석이 놀고 있었습니다. 세면장, 화장실, 수돗가, 간이식당(함바집)이 자리 잡은 해변 초입은 피서객들이 남긴 음식물쓰레기가 넘쳐납니다. 당연히 도둑고양이가 들끓습니다. 다행히 피서 성수기가 지나 야영지는 텅 비었고, 간혹 길냥이만 눈에 뜨입니다. 집토끼 기질이 녀석을 이곳까지 불러 들였을까요? 어제 아침 녀석은 팔자좋게 이동실 화장실 시멘트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해지면서 한낮 따가운 햇볕의 온기가 남아 있는 곳 입니다.
어머니는 마루 의자에 앉아 계셨다가 제가 산책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밀치면 매일같이 묻습니다.
“토끼 봤냐”
“흰 놈은 바위벼랑 부근에 항상 있는데, 수놈은 천방지축이예요. 텐트 치는데서 막 뛰어 다니네요.”
“에구, 그 놈이 사람 손 타면 어쩌려고.”
배트맨의 로빈처럼 온통 흰 몸에 눈 주위만 시커먼 애완용 토끼 토진이는 넉달 만에 다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과에 앉은 청개구리 (0) | 2015.10.01 |
---|---|
선창에 토끼가 나타났다. (0) | 2015.09.14 |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3 (0) | 2015.08.06 |
어머니의 망중한 (0) | 2015.07.27 |
저수지의 치욕 (0) | 201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