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가 하루 지난 23일 주문도 진말 들녘 모퉁이 못자리입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 온 칠월 초순이면 중만생종 벼는 중간물떼기를 하고, 조생종 벼는 이삭거름을 줄 시기입니다. 때가 때인 만큼 검푸르게 짙어가는 녹색융단으로 덥혀있어야 할 논들이 여적 잡풀만 돋은 맨땅 그대로입니다. 강화도는 가뭄과의 전쟁이 선포된 지 햇수로 2년이 되었습니다. 작년 사정도 올해와 매한가지였지만 모내기 2 ~ 3일 전 다행히 100mm의 빗줄기가 밤새 퍼부어 간신히 모내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뿌리를 내린 모들은 따가운 햇살을 탄수화물로 저장시켜 예년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강우량으로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대중매체가 떠들어대듯 200년 만에 찾아 온 올 가뭄은 더욱 혹독했습니다. 1. 1 ~ 6. 23.까지 제가 사는 주문도의 강수량은 총 119mm 뿐입니다.
주문도저수지 물로 벼농사를 짓는 면적은 진말 들녘의 20만평입니다.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드러난 바닥을 연일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동원되어 준설작업을 마쳤습니다. 한해로 끝낼 농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년을 기약하는 사전정지 작업입니다. 저수지 물을 마지막까지 흘려 모내기를 마친 면적이 15만평입니다. 저수지에서 가장 먼 5만평의 논들은 제때 모내기를 포기하고 못자리 모판을 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업용수 부족으로 모 상자에서 자란 어린모들은 한 달이 지나 누렇게 말라 죽었습니다. 넓은 본답에 나가 벼로 자라나야 할 모들이 안타깝게 생을 마쳤습니다.
늦게나마 비를 기다리며 못자리를 재설치했습니다. 볍씨는 조생종 오대벼입니다. 남양분유 광고로 귀에 익숙한 철원평야에 많이 심는 품종입니다. 하지만 섬주민들은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품종입니다. 당연히 수확이 빠른 조생종은 밥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느 해보다 한 달 늦게 설치하는 못자리는 수확까지 재배기간을 합산해 조생종을 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못자리 물은 간신히 관정을 뚫어 공급했습니다. 넓지 않는 섬인지라 짠물이 나와 마음대로 관정도 개발할 수 없습니다. 발 빠른 농부들은 모든 수단을 강구합니다. 못자리를 하지 않고 본답에 직접 파종하는 벼 건답직파, 농작물 재해보험 보상을 받기 위한 필사적인 마른 땅 모심기, 모내기 불가 지역의 대체작물로 콩, 대파, 메밀 종자 준비 등.
심겨진 모들도 뒷물 부족으로 뻘겋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웃 기초자치단체 김포시 통진읍 가현 양수장의 물을 퍼 날라 타들어가는 논에 물을 급수하고 있습니다. 소방차, 군용차, 레미콘, 급수차 등 가능한 모든 차량이 동원되었습니다. 비상상태를 맞은 농부들의 구슬땀 흘리는 현장이 안쓰럽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꼴입니다. 지난 21일 휴일 박근혜 대통령은 강화도의 타들어가는 논을 찾아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청와대로 돌아갔습니다. 섬 농부들은 장마전선이 북상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올 중부지방 장마는 건장마라는 절망적인 예보를 내놓았습니다. 장마가 100mm 이상 비를 뿌리지 않으면 섬 농부들은 두 번 모판을 엎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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