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고기도 낳지 못할 바에는 / 불을 피우지 그래 / 무더운 날은 / 활활 타오르는 가슴이라도 후벼파야지 / 들춰진 치맛자락에서 / 서투른 방생을 보았지 / 이젠 갈라진 혓바닥으로 무슨 말을 하나 / 비야, 제발 부탁인데 / 치욕 그만 덮어줄 수 없겠니
김희업의 「마른 연못」(시집 『칼 회고전』中에서)의 전문입니다. 볼음도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포클레인의 무한궤도 자국이 선명합니다. 80년도에 축조된 저수지는 35년 만에 처음으로 ‘어떤 물고기도 낳지’ 못하는 치욕적인 상황을 맞았습니다. 해를 이은 지독한 200년 만의 가뭄에 10만평 넓이의 저수지가 온전히 땅바닥을 보였습니다.
바다에 제방을 쌓아 축조한 저수지는 당연히 마을보다 바다 방향으로 갈수록 깊었습니다. 이미지에서 제방 가까이 흰 물줄기가 흐릿하게 보입니다. 모 낼 물도 모자랐습니다. 농부들은 하늘만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바지장화를 신고, 가래질에 나섰습니다. 높은 지대를 깎아 물길을 내서 바닥의 고인 물을 양수장으로 이끌었습니다. 물이 고이길 기다려 펌프를 가동해 물 부족으로 모내기를 할 수 없었던 들녘도 간신히 모내기를 하였습니다. 일단 물맛을 본 모들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연일 작열하는 뙤약볕이지만 가끔 흩날리는 빗방울로 목마름을 견디며 모는 어느새 벼로 성장했습니다.
깊게 파인 양수장 수조에 물고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매운탕이 일품인 빠가사리가 팔뚝만합니다. 잉어는 말그대로 어린애만합니다. 저수지에서 가장 흔하던 가물치는 보이지 않습니다. 섬사람들은 가물치는 벌써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독한 생명력입니다. 녀석들은 땅속 깊이 몸을 사리고 장마를 기다립니다. 가물치가 스스로 ‘방생’을 준비 합니다. 준설 작업하는 불도저, 포클레인, 덤프트럭의 요란한 굉음 속에서 왜가리, 백로, 저어새, 갈매기, 재두루미가 물 빠진 저수지 바닥의 횡재한 먹이사냥에 여념이 없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방학을 맞아 성균관대 학생 60명이 농활을 왔습니다. 볼음도 저수지 제방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그늘에서 젊은이들이 땀을 들였습니다. 주민들은 학생들의 잠자리로 마을회관을 내주었습니다. 학생들은 감자를 캐고, 양파와 마늘을 뽑았습니다. 물 부족으로 모내는 시기를 맞추질 못해 어느 해보다 논김이 말도 못합니다. 노동력이 부족한 섬마을에서 학생들의 농활을 아주 요긴합니다.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에 대체작물로 콩을 파종하는 일도 학생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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