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2

대빈창 2015. 6. 8. 05:56

 

 

야생의 삶, 한 달을 넘어섰습니다. 녀석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잿빛 수놈은 토돌이, 누런 암놈은 토순이입니다. 토진이가 언니면서 누나이고, 토돌이와 토순이는 한배 쌍둥이인 셈입니다. 아침저녁 산책마다 눈을 크게 뜨고 울창한 아까시 숲을 둘러봅니다. 날이 갈수록 신록이 우거져 녀석들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며칠 녀석들을 지켜보니 토끼는 수놈 따로, 암놈 따로 생활하는 것 같습니다. 여명이 터오는 산책에서 세 놈이 눈에 뜨인 것은 단 한번입니다. 토진이와 토순이가 다정하게 제방길가에서 풀을 뜯을 뿐 토돌이는 영 볼 수 없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합니다. 아침 배는 결항입니다. 토순이는 호기심이 많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가 토끼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토끼 봤냐?”

“예, 오늘은 토끼가 바닷가까지 나왔어요” 하며 휴대폰의 사진을 보여드렸습니다.

“같이 구경나왔구나.” 어머니는 토끼가 아침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우리를 여기 이렇게 살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뜻으로 인사하러 나온 것으로 여깁니다.

녀석들은 바닷가 자갈의 소금을 핥으러 나온 것일까요. 아니면 해풍을 맞으며 자란 쑥에서 염분을 섭취하고 있을까요. 발자국 소리에 놀란 토끼들이 바닷가(대빈창 할머니들이 상합을 캐러 갯벌로 들어서는 제방 끝 시멘트구조물)에서 지네끼리 놀다 바위절벽 틈새로 숨어들었습니다. 좁은 공간의 공포감에 토진이와 토순이가 발밑을 지나쳐 산을 향해 달음질쳤습니다. 토돌이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녀석들의 아지트는 사석더미로 추측됩니다. 토진이는 낯선 이가 눈에 뜨이면 어린 토순이와 토돌이를 몰아 사석더미 틈으로 숨겨줍니다. 토돌이는 게으릅니다. 서향의 해변은 해가 늦게 떠오릅니다. 오늘도 이른 아침 토돌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뜨거운 한낮, 사석더미 아까시 숲의 울창한 가지를 젖히자, 토순이와 토돌이가 모래바닥에 배를 깔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토순이가 자리를 피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저녁을 비웠지만 햇살은 여전히 따갑습니다. 평소보다 늦게 산책에 나섰습니다. 제방 끝에 다다르자 시뻘건 해가 바다 속으로 몸을 사립니다. 포클레인 한 대. 시멘트 포대, 모래 무더기.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부들은 하루 일을 끝내고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공사장에서 토순이 혼자 아까시 잎사귀를 뜯습니다. 항상 눈에 뜨이던 토진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되돌아 나오는 길. 풀밭에서 토돌이와 토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인들처럼 숨박꼭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토돌이는 토진이가 귀찮다는 듯 자꾸 벗어나려 애를 쓰고, 토진이는 끈질기게 토돌이에게 대시하며 스킨십을 시도합니다. 토진이는 어느덧 암놈이었습니다. 덩치는 토돌이가 커졌지만 토진이가 귀찮을 뿐입니다. 토돌이는 성을 모르는 아직 아이입니다.

며칠째 새끼토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낯익은 토진이만 아침저녁으로 길가 풀을 오물거립니다. 제방 끝에 다다르니 까치들의 울음소리만 요란합니다. 까치들이 토진이에게 달겨듭니다. 토진이는 요령껏 몸을 피하며 풀을 오물거립니다. 새끼토끼들은 까치들이 무서워 숲속에 몸을 감추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녁산책. 오랜만에 토순이가 혼자 제방 끝에서 풀을 뜯으며 생의 환희에 들뜬 몸짓을 보입니다. 다이빙 선수가 스프링보드에서 뛰어올라 몸을 비꼬며 떨어지듯 녀석의 용솟음치는 역동성은 정적에 사로잡힌 풍경을 떨림 가득한 생동감으로 일시에 바꾸었습니다. 새끼토끼들은 안전하게 겨울을 날수 있을까요. 토진이의 경험이 빚어내는 지혜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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