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띠 병신년 새해 첫 글을 토끼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제 글에 등장하는 토끼는 두 부류입니다. 이미지의 선창 토끼 털북숭이와 절름발이 그리고 대빈창 해변의 야생으로 되돌아간 애완토끼 토진이입니다. 2016년 첫 글을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6」으로 잡았었습니다. 엊그제 수놈 토돌이가 근 4개월 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탕아가 돌아온 듯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토진이를 찾으려 산비탈에 눈길을 주며 걷는데 길섶 우거진 마른풀더미에서 무언가 후다닥 소나무 숲으로 튀어 달아났습니다. 어린 고라니로 짐작했는데, 뒷모습이 꼬리 짧은 회색털빛 토끼였습니다. 분명 토돌이였습니다. 신년 첫 글을 돌아온 토돌이(집토끼 수놈)로 잡고 녀석의 모습을 담으려 눈을 부릅뜨고 대빈창 해변에 나갔지만 감감무소식입니다. 할 수 없이 대타로 선창토끼가 나섰습니다.
날이 차지며 선창토끼는 우리에 갇혔습니다. 한겨울이 되자 바다 바람이 매섭습니다. 보온덮개로 우리를 꽁꽁 싸매 녀석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모퉁이집 주인은 창고 한 칸을 우리로 개조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털북숭이와 절름발이가 이튿날부터 선창가는 길에서 뛰어놀았습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습니다. 녀석들의 배설물이 귀찮아 아예 바깥나들이를 시킨 것인지, 저번처럼 주인도 알지 못할 빠삐용 탈출을 시도하는 것인지. 주인은 녀석들이 텃밭을 놀이공원 삼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라탕(주문도 굴밭)에 나가 굴쪼기에 바쁩니다.
녀석들은 선창을 빠른 속도로 오가는 차량을 요행으로 비켜 달아납니다. 로드킬에서 목숨을 건진 절름발이의 경험이 녀석들의 조심성에 기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마늘밭을 피복한 짚을 오물거리더니, 녀석들이 오늘은 대파 밭에 진출했습니다. 모든 작물이 엽록소를 탈색한 시기, 녹색의 향연을 베푸는 채소는 파가 유일한 계절입니다. 맵지도 않은지 녀석들은 대파 줄기를 잘도 끊어 씹습니다. 닭장 안의 암탉이 대파를 씹는 토끼들의 어이없는 모습을 넋놓고 쳐다봅니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토끼들이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엘니뇨 현상인지,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합니다. 비가 잦은 겨울입니다. 털북숭이와 절름발이가 오늘도 선창가는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뛰어갑니다. 이래저래 토끼 지킴이 늑대만 바쁘게 생겼습니다. 휴대폰을 들고 다가서자 늑대가 꼬리를 치켜세우며 앙칼지게 짖습니다. 그새 털북숭이가 늑대의 개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냉큼 훔쳐 오물거리며 달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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