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뒷집 새끼 고양이 - 5

위 이미지는 노순이와 재순이가 현관문 앞에 세워 둔 보행보조기에 올라앉아 어머니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광경입니다. 녀석들은 이제 뒷집 새끼 고양이가 아니라 우리집 어른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두 놈은 밤낮을 우리집 뒤울안과 현관문 앞에서 식구를 기다리거나 평상에 앉아 해짧은 겨울 해바라기를 합니다. 하루 중 두 번 자기 집으로 향합니다. 뒷집 형수가 녀석들의 끼니를 챙기는 아침저녁입니다. 노순이와 재순이는 자기집에서 요기를 하고 부리나케 우리집으로 내달립니다. 끼니때가 돌아오면 뒷집 형수가 녀석들을 부르거나, 어머니가 보행보조기를 밀면 녀석들이 알아서 따라 다닙니다. 겨울이라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으신 어머니가 바깥에 나서면 녀석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머니를 졸졸 따라 나섭니다. "아니, 이 녀석들이 할머..

진돌이는 진돗개다.

어머니는 고명딸을 잃은 상실감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막내고모집에 몸을 누이기로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이모가 문상을 마치고 서울에 되돌아가시려 합니다. 나는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이종사촌과 함께 막내고모가 살고계신 면소재지로 향했습니다. 저녁 한 끼 대접해 드려야겠습니다. 면소재지는 김포한우맛집 다하누촌 마을이었습니다. 막내고모까지 한식당에서 메뉴판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 특갈비탕을 주문했습니다. 큰 갈비 두 대가 통째로 그릇에 담겼습니다. 가위와 집게로 뼈다귀에서 고기를 발라내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음식 맛이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식당문을 나서자 진돌이가 생각났습니다. 살점을 발라 낸 큰 한우갈비 10대를 비닐봉지에 담아 적재함에 던졌습니다..

누이의 죽음 - 3

가족과 주위 분들이 쌍초상 나겠다고 우려하십니다. 어머니는 주위에 알리지 말고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가장 좋은 베옷을 입혀 보내라고 작은형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발인도 참석 못하고 어머니와 아침배로 섬에 들어왔습니다. 보일러를 가동시키고, 급하게 쌀을 씻어 밥을 안쳐 1시배에 올랐습니다. 승화원에서 화장을 마친 누이 유골이 담긴 토기를 장례식장과 강화도 포구 중간지점에서 작은 형을 만나 건네받았습니다. 형 가족과 제대로 된 밥 한 끼 못 나누고 서로 길을 헤어졌습니다. 어차피 배가 떨어져 섬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깊은 물속에 누운 것처럼 초저녁부터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매화나무 주변은 텃밭의 콩 수확을 하고 남은 콩대로 덮여 흙이 얼지 않았습니다. 흙살이 부드러워 삽날을 잘 받았습니다. 누이를 ..

누이의 죽음 - 2

누이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누이는 생명의 불씨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상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누이의 상태를 조용히 말했습니다. “일이 멀지 않았다고.” 누이의 폐 사진은 공허했습니다. 누이의 생에 대한 집착이 가련했습니다. 어머니는 고명딸을 가슴에 묻고 계셨습니다. 집으로 향하며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화장해서 섬에 모셔요. 수목장으로. 누이가 좋아하던 곳에” “아니다. 거기는 너무 춥다. 동생은 추위 잘 타잖아. 따뜻한 곳에 묻어라.” 어머니의 말씀에 물기가 가득했습니다. 북향인 우리집 뒤울안은 응달 입니다. 어머니는 누이의 추위를 걱정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

누이의 죽음 - 1

2016년 12월 13일 오전 7시. 사위는 아직 어두웠습니다. 어머니를 뒷좌석에 모셨습니다. 예열을 하느라 미리 시동을 켜둔 계기판에 우연히 눈길이 간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444. 게이지가 가리키는 숫자는 연료탱크의 기름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입니다. 어제 저녁 작은형한테 전화를 받았습니다. 누이의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고.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오전 11:30 ~ 12:00, 오후 5:00 ~ 5:30. 두 번의 짧은 시간 뿐입니다. 9시 10분 강화도 외포리 선창 도착. 시간이 남았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진돌이 목테를 사자고.” 순한 진돌이는 어릴 적 목줄을 여적 달고 살았습니다. 만 3년이 넘었습니다. 쇠목줄은 그대로인데 진돌이의 목이 굵어지며 쓸린 목테가 닳아 헐렁했습니다. 누이가 ..

2016년 병신년 해넘이

위 이미지는 2016년 12월 31일 오후 5시 5분 대빈창 해변 해넘이 풍경입니다. 일몰시각은 5시 25분이었지만, 제방을 따라 산책을 하던 나는 서둘러 손전화를 꺼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무인도 분지도를 비켜서서 떨어지던 병신년의 마지막 해가 수평선에 드리운 거무스레한 막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장렬한 산화는커녕 노을도 흩뿌리지 못한 채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2017년 정유년 새해 첫 포스팅을 신년 해돋이가 아닌 지난해 해넘이로 잡은 것은 말그대로 다사다난한 해였기 때문입니다. 2016년 12월 31일 마지막 날 10차 촛불집회 행사는 '송박영신(送朴迎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다’는 뜻입니다. 두 달 동안 10차의 촛불집회는 연인원 ..

뒷집 새끼 고양이 - 4

위 이미지는 요즘 아침밥상머리에서 반복되는 풍경입니다. 절기는 소설을 지나 대설로 향하고 있습니다. 6시 알람소리에 눈을 부비며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쌀을 씻어 압력밥솥에 앉히고 현관을 나섭니다. 짙게 드리운 검은 장막 점점이 가로등 불빛이 졸고 있습니다. 언덕 위 집에서 대빈창 해변 가는 길과 느리마을로 향하는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대빈창 해변을 돌아오는 아침 산책은 보름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염려하시는 어머니 말씀을 따라 추운 계절 산책을 런닝머신으로 대신합니다. 마을 가운데 건강관리실로 향합니다. 벽면 TV에 눈길을 주며 십리(4km)를 걷고 집에 돌아오면 7시가 됩니다. 녀석들의 귀는 아주 예민합니다. 식탁에 밥상을 차리는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녀석들이 조르기 시작합니다. 발린 생선..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 2

-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모르는 고라니의 멍청한 짓은 쓸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스개로 들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말, 노루, 고라니 등 풀만 먹는 초식동물은 담낭(膽囊)이 없습니다. - 2012년 7월 초에 올린 글의 마지막입니다. 엊그제가 입동이었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 서둘러 저녁산책에 나섰습니다. 이미지는 다랑구지 들녘을 지나 대빈창 해변의 초입입니다. 해안을 따라 가늘고 기다랗게 방풍림이 조성되었습니다. 숲 바닥은 조금만 파도 모래가 나옵니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타고 모래가 사구를 형성했습니다. 35여 년 전 가난했던 시절. 한 뼘의 논이라도 늘릴 심산으로 제방을 쌓고, 해송을 심어 바람을 막았습니다. 숲에서 새끼 고라니가 해변 가는 길 위로 먼저 튀어 나왔습니다. 녀석은..

뒷집 새끼 고양이 - 3

방에 누워 천장을 우두커니 바라보는데, 드르륵. 드르륵. 무엇을 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가 맷돌로 도토리 껍질을 부비는 소리입니다. 산책마다 호주머니에 한 움큼씩 주워 물 담긴 양동이에 던져 넣은 도토리가 한 말이나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슬라브 옥상에 그물을 펴고 도토리를 말렸습니다. 껍질을 벗긴 도토리 알맹이를 물에 불려 믹서로 갈아 함지박에 물을 붓고 앙금을 가라앉혔습니다. 전분을 한지에 얇게 펴 햇빛과 보일러 배관이 통과하는 마루의 따뜻한 곳에 말렸습니다. 도토리 녹말가루가 하얗게 부풀어 오릅니다. 찬바람이 이는 계절 도토리묵이 식탁에 오르겠지요. “니네 집에 가” 도토리 껍질을 벗기는 어머니를 찾아 재순이가 슬라브 옥상까지 올랐습니다. 머리를 부비며 귀찮게 들러붙자 어머니가 재순이를 떠밀었습..

지 살 궁리는 다 한다.

주객전도. 노순이의 오른 앞다리 무릎 관절의 상처가 깊습니다. 몸이 약한 녀석이 절뚝절뚝 힘겹게 몸을 옮깁니다. 노순이에게 린치를 가한 범인은 감나무집 고양이입니다. 새끼 고양이의 자지러지는 비명에 놀라 뒷집 형수가 기겁해 부엌에서 뛰쳐나갔습니다. 프라이 판에 담긴 밥을 먹던 노순이에게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덩치 큰 노란 고양이가 줄행랑을 놓았다고 합니다. 겁에 질린 노순이는 콩밭에 몸을 숨겼습니다. 감나무집 형수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굶어야 쥐를 잡는다는 지론입니다. 녀석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웃집 새끼 고양이의 밥을 탐냈습니다. 주인의 눈길이 멀어진 틈을 타 재순이와 노순이의 밥을 훔쳤습니다. 녀석은 쥐잡는 노고가 귀찮아, 이웃집 새끼 고양이들의 밥에 길들여졌습니다. 무엇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