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누이는 생명의 불씨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상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누이의 상태를 조용히 말했습니다. “일이 멀지 않았다고.” 누이의 폐 사진은 공허했습니다. 누이의 생에 대한 집착이 가련했습니다. 어머니는 고명딸을 가슴에 묻고 계셨습니다. 집으로 향하며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화장해서 섬에 모셔요. 수목장으로. 누이가 좋아하던 곳에”
“아니다. 거기는 너무 춥다. 동생은 추위 잘 타잖아. 따뜻한 곳에 묻어라.”
어머니의 말씀에 물기가 가득했습니다. 북향인 우리집 뒤울안은 응달 입니다. 어머니는 누이의 추위를 걱정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고통스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을 나오면서 누이의 귀에 조용히 말을 흘렸습니다.
“무덤에 작은 비석 세워 줄께. 영세명도 새기고, 십자가도 새기고. 아버지 비석처럼. 눈 편히 감으렴. 어머니가 텃밭 매시면서 니께 매일 눈길을 주실 거야. 마음 편하게 떠나.”
“아휴. 이제 택배도 없겠구나. 뭐만 생기면 그렇게 엄마 줄라고 매일 택배 보내더니. 막내 오빠가 농사 진 쌀과 김장이라고 그렇게 좋아하더니.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네.”
섬에 들어가는 카페리 선실의 기둥에 등을 기대며 어머니가 힘없이 한숨을 쉬셨습니다. 어머니는 고명딸의 영세명을 똑바로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시집가기 전 영세를 받았지만, 성당 발길을 끊은 하나밖에 없는 딸의 영세명은 모니카 입니다.
밤 10시. 어머니의 전화 받으라는 큰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작은형은 누이를 중환자실에서 누이의 모교 인근 장례식장에 모시고 전화를 했습니다. 곯아떨어진 나는 4통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작은형이 다급한 마음에 집으로 전화로 걸었고, 어머니를 통해 저를 깨웠습니다. 누이는 12월 22일 저녁 8시 35분. 생의 끈을 놓았습니다. 장례식장은 아버지를 모셨던 곳으로 누이가 살아생전 미리 부탁했습니다. 누이는 많은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례식장 안주인은 누이와 언니 동생하는 사이였습니다. 한 달 전 누이는 섬의 뒷집 형수에게 굴 여덟 관을 부탁했습니다. 마지막 길을 떠나면서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선물이었습니다. 장례식장 여주인도 굴 반관을 선물 받았다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어머니가 힘이 부치시는 지 몸을 가누지 못하십니다. 나는 장례를 작은형께 부탁하고 다음날 아침배로 어머니를 모시고 섬에 들어왔습니다. 누이의 발인은 12월 24일 성탄절 이브 아침 여덟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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