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3일 오전 7시. 사위는 아직 어두웠습니다. 어머니를 뒷좌석에 모셨습니다. 예열을 하느라 미리 시동을 켜둔 계기판에 우연히 눈길이 간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444. 게이지가 가리키는 숫자는 연료탱크의 기름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입니다. 어제 저녁 작은형한테 전화를 받았습니다. 누이의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고.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오전 11:30 ~ 12:00, 오후 5:00 ~ 5:30. 두 번의 짧은 시간 뿐입니다. 9시 10분 강화도 외포리 선창 도착. 시간이 남았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진돌이 목테를 사자고.” 순한 진돌이는 어릴 적 목줄을 여적 달고 살았습니다. 만 3년이 넘었습니다. 쇠목줄은 그대로인데 진돌이의 목이 굵어지며 쓸린 목테가 닳아 헐렁했습니다. 누이가 살던 면소재지로 향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의 혈압 약은 누이가 두 달 치를 지어 택배로 섬에 보냈습니다. 약이 떨어져갑니다. 의사 선생께 사정을 말하고 석 달 치를 지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면회 가능한 인원은 두 명입니다. 어머니와 나는 출입증을 목에 걸고 안내인 뒤를 따랐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망치로 가슴을 마구 두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누이 곁에 머물렀습니다. 한 오라기도 없는 민머리. 살점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상접한 피골. 온 몸을 휘감은 주사바늘과 약물이 든 병들.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침대에 묶인 팔목이 멍으로 시커멓게 탔겠습니까. 누이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눈도 뜨지 못했습니다. 말귀는 어렵게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두 번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고 합니다.
“내 딸이 왜 여기 누워있냐. 응. 제발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어머니의 울부짖는 소리에 울컥 가슴이 메입니다. 재작년 7월 어머니는 위성도시의 대학병원에서 척추협착증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누이가 3주간 병간호를 하였습니다. 누이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자꾸 토했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용하다는 대학병원은 대장암 진단을 내리고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수술 다음 날 병문안을 갔습니다. 누이는 고통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퇴원 후 누이는 힘들다는 항암치료에 들어갔습니다. 한 번 주사 시간이 52시간. 센터에 도착하면 매번 빈 방이 없어 다시 시골에 내려왔다 한 밤중에 서울 도심으로 향하는 아픈 환자에게 번거롭기 그지없는 나날이었습니다. 해를 넘겨 항암치료는 열여덟 번째. 누이는 음식물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물에서 똥 냄새가 난다.”고 비위가 상했습니다. 저녁마다 섬의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리는 누이 목소리가 기침 소리에 잠겨들었습니다. 누이의 면역력은 급속하게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누이는 목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었습니다. 스스로 숨쉬기가 어려운 누이는 시내 종합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이틀이 지나고 누이의 의식은 희미해져 인공호흡기로 가냘픈 삶을 연명하게 되었습니다. 중증 폐렴. 이미 암세포가 누이의 몸을 점령했습니다. 누이는 앞으로 얼마나 생을 더 영위할 수 있을까, 눈물이 왈칵 솟구칩니다.
“누이야. 막내오빠다. 네 몫까지 잘할게. 마음 편히 가져라.”
면회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나는 누이의 귓전에 물기 가득한 말을 읊조렸습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어머니를 부축해 중환자실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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