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뒷집 새끼 고양이 - 7

봉구산을 넘어 온 햇살이 뒷울안을 비추었습니다. 이른 아침을 드신 어머니가 평상에 앉아 모닝커피를 드시며 고양이들에게 말을 걸으십니다. 녀석들은 한결같이 야 ~ ~ 옹, 야 ~ ~ 옹 말대꾸를 합니다. 재순이는 깔방석에 막 올라서고, 노순이는 무거운 몸을 웅크렸습니다. 계절 감각이 무딘 감나무는 새잎을 막 틔어냈고, 사철나무 잎은 코팅한 것처럼 윤기가 반들반들 합니다. 명자나무의 붉은 꽃잎은 바람결에 이리저리 휩쓸렸습니다. 녀석들이 개명을 원치 않는 지, 아니면 녀석들이 자신의 이름에 개의치 않는 지, 그도 아니면 새로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할까 우려 때문인지, 아무튼 예전 이름을 그대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성별에 맞는 이름을 가진 녀석은 노순이 뿐입니다. 재순이는 수놈이고, 검돌이는 암놈이었습니다. 노순..

대선 전날 카네이션을 보며

대선 : 백기완 - 권영길 - 문재인 - 심상정 총선 : 민중당 - 민주노동당 - 통합진보당 - 정의당 87년 국민대항쟁 이후 어머니와 제가 지지한 대선후보와 총선 후보의 정당입니다. 글을 모르시는 어머니는 대학물을 먹은 막내아들의 정치 성향을 따라 투표를 하셨습니다. 30년 동안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보지 못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저는 386세대입니다. 가장 근접한 선거가 지난 18대 대선입니다. 진보정당 후보의 사퇴로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지만 안타깝게 석패했습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징치한 촛불 혁명은 탄핵을 끌어냈고, 조기 대선이 내일입니다. “꼬부랑 할머니랑 아랫집 할머니가 마실 오셨는데, 1번 찍는다고 하더라. 매달 나오는 연금을 3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했대. 어머니의 눈길이 빛나고 있..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3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 ○ ○날 우리들 세상 ○ ○ ○를 산토끼로 바꾸어야겠습니다. 흥이 절로 나는 오월이 돌아왔습니다. 대빈창 해변의 제방 끝 삼태기 지형의 가파른 벼랑에 색이 점차 짙어갔습니다. 절기에 둔감한 이곳도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입니다. 풀과 나무가 연두에서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아까시가 가지에서 새순을 틔우고 경쟁이나 하듯 허공에 오므렸던 잎을 펼칩니다. 으름덩굴은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뻗어 나갑니다. 제가 입을 오물거리며 섭식하는 것은 으름덩굴의 잎입니다. 정확히 제 나이는 만 네 살입니다. 4년 전 저는 오일장에서 만난 새로운 주인 손에 이끌려 오빠와 함께 이곳 섬에 왔습니다. 주인은 평일에 뭍에..

안산, 1989년 겨울

4월 셋째주 주말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의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공단 도시의 가로수는 꽃을 활짝 터뜨려 봄의 절정을 스스로 알리고 있었습니다. 낯익은 공단도시 안산. 30여 년 전 초겨울의 어느 날 나는 가벼운 이삿짐을 끌고 서해의 신생 도시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방인의 눈길에 도시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허허벌판 여기저기 멋대가리 없게 하늘로 고개를 치켜 든 몇 개의 건물이 띄엄띄엄 늘어섰습니다. 그 사이를 검은 뱀처럼 아스팔트가 구불거리며 잇고 있었습니다. 고잔동 〇 〇 빌라 월세 지하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사시사철 습기로 눅눅한 지하방은 연탄창고를 개조한 열악한 주거지였습니다. 이부자리와 밥통, 소형 중고 냉장고, 비키니 옷장, 허름한 몇 벌의 옷과 열 손가락으..

어부지리(漁夫之利)가 눈 앞에서

강안에 나와 있는 민물조개를 황새가 다가와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덤비자, 놀란 조개가 입을 오므려 황새의 부리를 물고 놓지 않았습니다. 지나던 어부가 황새와 조개를 한 번에 잡았습니다. 양쪽이 양보하지 않고 다투다가 제 3자가 이득을 챙기는 경우에 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속담입니다. 물이 많이 쓸어 배가 아래선창에 닿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 이름은 느리 입니다. 산부리가 길게 뻗어나가 늘어진 곶(串)을 느리라 부릅니다. 물이 밀면 물양장 선창에 객선을 대지만, 오늘처럼 사리 물때의 썰물 시는 산부리가 늘어진 끝 부분에 배를 댑니다. 바다가 얕아 매표소 앞에 배를 댈 수 없습니다. 아차도 출장길에 나섰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아래선창을 향해 걸었습니다. 시멘트 포장도로 아래 바다는 물이 빠져 굴돌..

3년만에 올라 온 세월호를 찾아가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이제 집에 다 와 가요.서해 바닷길을 따라 내려 왔어요.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어요.2017. 3. 31  주문도 ○ ○ ○ 3월 마지막 날 진도 팽목항을 향해 엑셀을 밟았습니다. 김포에서 인천을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남으로 향했습니다. 3년 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밤잠을 설치고 들뜬 마음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나섰던 길입니다.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노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섬을 출발한 지 8시간만에 진도 팽목항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3년 만에 올라 온 세월호가 망신창이 몸으로 반잠수함 ‘화이트마린’호에 실려 목포신항으로 이동하는 중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목포 시내를 통과할 즈음 가로변은 온통 노란 현수막과 배너기의 물결로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

뒷집 새끼 고양이 - 6

뒷집 새끼고양이 여섯 번째 글의 주인공은 검돌이입니다. 검돌이는 어른이지만 덩치는 여전히 새끼만합니다. 이제 녀석들은 한 주먹 크기의 새끼 고양이를 벗어나 쥐를 사냥하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녀석들은 한 배 형제입니다. 제가 성별 구분에 착각을 일으킨 것이 틀림없습니다. 가장 덩치가 큰 재순이를 어릴 적 뒷집 형수 말만 믿고 암놈으로 알았습니다. 녀석은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수놈이었습니다. 비만 고양이로 전락한 녀석은 쥐 사냥은 뒷전이고 먹는 데에 온 정신을 쏟습니다. 오죽하면 뒷집 형이 이런 말을 다했겠습니까. “쥐는 안 잡고 쳐 먹기만 해.” 덩치 작은 암놈 노순이가 쥐 사냥의 일등 공신입니다. 녀석은 쥐를 잡으면 전리품을 주인에게 대놓고 자랑합니다. 우리 집 쥐는 우리 현관 문 앞에, 뒷집 쥐..

청구회 추억

-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 『청구회 추억』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아름다운 산문은 선생이 1968년 7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의 사형수 시절에 쓴 글입니다. 하루 두 장 밖에 지급되지 않는 재생휴지에 한자 한자 적어 나가던 선생의 회한이 어땠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청구회 추억』을 세 번 만났습니다. 2008년 그림이 곁들여진 단행본은 손에 넣기가 저어되었습니다. 햇빛출판사의 초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빠졌던 글을 1998년 돌베개의 재간행된 책을 통해 읽었습니다. 아직 비닐포장을 뜯지 않은 『신영복의 엽서』에 영인본이 있습니다. 새로 나온 『..

갯벌을 걸어가는 기러기

굽을 곡, 갯벌 서, 떨어질 락, 기러기 안 - 곡서락안(曲漵落鴈). 이 땅은 어디를 가나 뛰어난 여덟 풍광을 내세우는 팔경(八景)을 포진시켰다. 관동팔경, 단양팔경, 수원팔경, 영동 한천팔경, 정선 화암팔경······. 광역이고 기초고 자치단체마다 팔경(八景)은 존재했다. 이는 중국의 유명한 자연경승지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했다. 소상팔경이란 글자 그대로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라는 두 강이 어우러지며 연출한 경승 8가지를 가리켰다. 팔경은 장소가 아닌 자연풍광이었다. 산시청람(山市晴嵐)ㆍ어촌석조(漁村夕照)ㆍ소상야우(瀟湘夜雨)ㆍ원포귀범(遠浦歸帆)ㆍ연사만종(烟寺晩鐘)ㆍ동정추월(洞庭秋月)ㆍ평사낙안(平沙落雁)ㆍ강천모설(江天暮雪)을 말했다. 여기서 평사락안(平沙落鴈)은 ‘평평한 모래와 떨어져 흩어지는..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2

2017년 정유년 설날 연휴가 나흘 뒤입니다. 대빈창 토끼 토진이가 네 살이 됩니다. 추운 계절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며 토진이와 눈을 맞추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엽록소가 사라진 계절. 토진이의 먹이섭취는 날이 갈수록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해변 제방에 이어진 산비탈의 풀을 맘껏 포식하던 토진이는 끼니를 찾아 가파른 산비탈을 헤맸습니다. 나의 대빈창 산책도 공휴일이나 찾게 되었습니다. 끈질기게 어둠의 장막은 물러날 줄 모르고 날도 차가워졌습니다. 평일의 걷기를 건강관리실 런닝머신으로 대신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주말을 맞아 나선 대빈창 산책도 토진이가 산속깊이 들어가면 만날 수 없습니다. 토진이를 앞으로 몇 해나 더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애완토끼의 수명을 검색합니다. 토끼의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