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안산, 1989년 겨울

대빈창 2017. 4. 28. 05:47

 

 

4월 셋째주 주말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의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공단 도시의 가로수는 꽃을 활짝 터뜨려 봄의 절정을 스스로 알리고 있었습니다. 낯익은 공단도시 안산. 30여 년 전 초겨울의 어느 날 나는 가벼운 이삿짐을 끌고 서해의 신생 도시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방인의 눈길에 도시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허허벌판 여기저기 멋대가리 없게 하늘로 고개를 치켜 든 몇 개의 건물이 띄엄띄엄 늘어섰습니다. 그 사이를 검은 뱀처럼 아스팔트가 구불거리며 잇고 있었습니다. 고잔동 〇 〇 빌라 월세 지하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사시사철 습기로 눅눅한 지하방은 연탄창고를 개조한 열악한 주거지였습니다. 이부자리와 밥통, 소형 중고 냉장고, 비키니 옷장, 허름한 몇 벌의 옷과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책이 이삿짐의 전부였습니다. 며칠 후 나는 공단 B블록의 소규모 영세업체 〇 〇 화학의 노동자로 밥을 샀습니다. 아침마다 누렇게 굳은 밥을 억지로 목구멍에 구겨 넣었습니다. 그 시절 시내버스 요금은 회수권을 사용했습니다. 현장노동자 초창기. 노동이 손에 익지 않아 지하방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입니다. 나의 안산 시절은 채 2년이 못되었습니다.

3월 마지막 날 3년 만에 뭍에 올라 온 세월호를 찾아 진도 팽목항과 목포신항에 발걸음을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세월호 선내 수습작업이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선체 내부에서 미수습자 남학생의 것으로 추정되는 교복이 처음으로 발견됐습니다. 미수습자 9명의 유골이 온전히 수습되기를 유가족의 심정으로 기도드려야겠습니다. 세월호 조타실 벽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17분 12초 입니다. 내달 2일은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천인공노할 범죄자 박근혜의 공판준비기일입니다. 촛불국민이 만든 장미대선이 11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9대 대선 후보자들이 서로 잘났다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죽 쑤어 개 줘는 꼴이 되기 쉽상 입니다. 촛불국민은 국정농단세력의 심판과 적폐청산을. 극단적인 양극화가 초래한 헬조선의 타파. 재벌 개혁 및 경제민주화, 노동존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사드와 북한 핵문제로 남북의 긴장이 전래없이 팽배하면서 '한반도 4월 위기설'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하늘나라로 떠난 젊은 영혼들 앞에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향을 피우고 국화 한 송이를 헌화했습니다. 분향소는 침울함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물기로 흐릿해진 눈길에 도로 변의 개나리꽃과 노란 현수막이 한데 어룽졌습니다. 푸른 노동복과 콧잔등에 쇠가 박힌 작업화 차림의 30년 전의 젊은 내가 공단 진입로를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주려 눈가에 그렁그렁한 물기를 손잔등으로 문지르며 다가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