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3

대빈창 2017. 5. 1. 07:00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 ○ ○날 우리들 세상

 

○ ○ ○를 산토끼로 바꾸어야겠습니다. 흥이 절로 나는 오월이 돌아왔습니다. 대빈창 해변의  제방 끝 삼태기 지형의 가파른 벼랑에 색이 점차 짙어갔습니다.  절기에 둔감한 이곳도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입니다. 풀과 나무가 연두에서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아까시가 가지에서 새순을 틔우고 경쟁이나 하듯 허공에 오므렸던 잎을 펼칩니다. 으름덩굴은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뻗어 나갑니다. 제가 입을 오물거리며 섭식하는 것은 으름덩굴의 잎입니다. 정확히 제 나이는 만 네 살입니다. 4년 전 저는 오일장에서 만난 새로운 주인 손에 이끌려 오빠와 함께 이곳 섬에 왔습니다. 주인은 평일에 뭍에 나가고 주말이면 섬에 돌아왔습니다. 아줌마는 섬을 떠나기 전 사료 5일치를 왕창 넣어 주었습니다. 오빠는 잿빛 털색의 강인한 소년이었습니다. 식탐이 강했던 오빠는 폭식과 기아가 반복되는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 끝내 생을 놓았습니다. 주인은 머뭇거리다 풀이 막 돋기 시작한 이곳에 나를 풀어 주었습니다.

나는 어쨌든 살아가야 했습니다. 다행히 가파른 벼랑을 뒤로 하고 서향을 향해 앉은 해변 제방 주변에 쑥이 돋았습니다. 위 이미지에서 보듯 나의 털색은 온통 하양입니다. 배트맨 로빈의 나비 가면처럼 눈 주위를 까만 털이 안경테처럼 둘렀습니다. 첫날 낯선 이가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겁이 많은 나는 제방공사에 쓰다 남은 사석더미에 작은 몸을 웅크렸습니다. 낯선 이는 사시사철 꾸준히 아침저녁으로 제가 살고 있는 삼태기 지형 제방 끝머리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제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진짜 토끼라는 의미로 토진이입니다. 그가 보이지 않으면 나는 주문도와 아차도 좁은 해협을 빠져 나가는 아침 객선에 그가 몸을 실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저는 독수공방 팔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제가 외로워 보였는지 그동안 3마리의 형제를 풀어주었습니다. 처음은 재돌이와 노순이 남매였습니다. 나를 졸졸 따라 다니던 노순이는 진드기의 극성에 탈진했습니다. 오빠 재돌이는 역마살이 끼었는지, 혈기가 너무 왕성한 것인지 산 속으로 들어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절름발이 얼룩무늬 사내를 다시 들였습니다. 절름발이는 며칠 못가 솔개의 억센 발톱에 체이는 불행한 운명이었습니다.

토건공화국은 한적한 섬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제방 포장과 바닷길 진입로 공사로 포클레인의 굉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낯선 이들이 나의 삶터에 아무 거리낌 없이 드나들었습니다. 나는 제방에서 떨어진 아까시 숲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여름 피서 성수기때 도회지 주인을 따라 섬에 들어온 반려견, 애완묘들이 이곳까지 진출합니다. 나는 쭈뼛 털이 곤두설 수밖에 없습니다. 사석더미 좁은 틈에 몸을 사리는 것이 안전한 방법입니다. 그는 봄이 돌아와 새싹을 마음껏 뜯어먹을 수 있는 지금, 저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오해입니다. 먹을거리는 풍부하지만 진드기의 등쌀에 저의 스트레스가 솟구칩니다. 제 털이 워낙 윤기있어 놈들은 털이 없는 길쭉한 귀를 집중공략합니다. 차라리 마른 풀일지언정 진드기가 없는 겨울나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귀가 너무 가렵습니다. 뒷발을 뻗어 귓바퀴를 긁어댑니다. 발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잘근잘근 씹어대는 것이 놈들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