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산을 넘어 온 햇살이 뒷울안을 비추었습니다. 이른 아침을 드신 어머니가 평상에 앉아 모닝커피를 드시며 고양이들에게 말을 걸으십니다. 녀석들은 한결같이 야 ~ ~ 옹, 야 ~ ~ 옹 말대꾸를 합니다. 재순이는 깔방석에 막 올라서고, 노순이는 무거운 몸을 웅크렸습니다. 계절 감각이 무딘 감나무는 새잎을 막 틔어냈고, 사철나무 잎은 코팅한 것처럼 윤기가 반들반들 합니다. 명자나무의 붉은 꽃잎은 바람결에 이리저리 휩쓸렸습니다.
녀석들이 개명을 원치 않는 지, 아니면 녀석들이 자신의 이름에 개의치 않는 지, 그도 아니면 새로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할까 우려 때문인지, 아무튼 예전 이름을 그대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성별에 맞는 이름을 가진 녀석은 노순이 뿐입니다. 재순이는 수놈이고, 검돌이는 암놈이었습니다. 노순이와 검돌이가 새끼를 뱄습니다. 스무날 모습을 보이지 않던 재순이가 엊그제 우리집에 발걸음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재순이가 몹시 앓았나보다. 몸이 반쪽이 됐네.”
비만고양이 재순이가 몰라보게 날씬해졌습니다. 행동거지가 날렵합니다. 녀석은 병치레동안 우리집에 발걸음을 멀리 했습니다. 겁이 많아 조심스러운 검돌이는 재순이와 함께 발걸음이 뜸하더니 뒷집 뒤울안에 자리잡고 얼씬도 안합니다. 검돌이는 몸이 무거워서인지, 재순이가 낯을 보이지 않았서인지, 아니면 간식거리가 떨어진 이웃집 마실이 탐탁치 않은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노순이만 무거운 몸을 끌고 부엌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기가 왔다고 갸날픈 목소리로 기척을 냅니다.
야 ~ ~ 옹, 야 ~ ~ 옹.
어머니는 새끼 밴 노순이가 가여운 지 특별 간식거리를 끼니마다 챙기십니다. 세 마리의 뒷집 새끼 고양이는 어른이 되어 우리집 고양이가 되더니 이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새끼 밴 검돌이는 뒷집에서, 수놈 재순이는 하루 종일 두 집을 시계불알처럼 왔다갔다하고, 노순이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줄창 우리집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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