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을 곡, 갯벌 서, 떨어질 락, 기러기 안 - 곡서락안(曲漵落鴈).
이 땅은 어디를 가나 뛰어난 여덟 풍광을 내세우는 팔경(八景)을 포진시켰다. 관동팔경, 단양팔경, 수원팔경, 영동 한천팔경, 정선 화암팔경······. 광역이고 기초고 자치단체마다 팔경(八景)은 존재했다. 이는 중국의 유명한 자연경승지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했다. 소상팔경이란 글자 그대로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라는 두 강이 어우러지며 연출한 경승 8가지를 가리켰다. 팔경은 장소가 아닌 자연풍광이었다. 산시청람(山市晴嵐)ㆍ어촌석조(漁村夕照)ㆍ소상야우(瀟湘夜雨)ㆍ원포귀범(遠浦歸帆)ㆍ연사만종(烟寺晩鐘)ㆍ동정추월(洞庭秋月)ㆍ평사낙안(平沙落雁)ㆍ강천모설(江天暮雪)을 말했다. 여기서 평사락안(平沙落鴈)은 ‘평평한 모래와 떨어져 흩어지는 기러기’라는 의미였다. 주문도의 팔경은 평사락안(平沙落鴈) 대신 곡서락안(曲漵落鴈)이 마땅할지 모르겠다.
날이 아주 추운 날 나는 맞바람을 맞으며 선창에서 느리 마을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월파벽 가까이 있던 세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날개 짓을 시작했고, 여덟 마리의 기러기가 물이 드는 바다 쪽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이 위 이미지다. 녀석들의 물갈퀴가 그려진 발자국이 갯벌에 뚜렷하다. 마치 경남 고성 상족암의 공룡 발자국처럼. 초식동물인 기러기가 왜 갯벌에 내려앉았을까.
“무슨 새일까. 기러기 같은데”
서너해 전 새해 첫날 많은 섬 주민들이 앞장술 해변에 모여 화도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차 어둠이 가시며 먼동이 터오는데 덩치 큰 한 무리의 새떼가 저 멀리 갯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새 이름을 물었고, 나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기러기는 아닐 거예요. 기러기는 알곡을 먹는 초식성인데 갯벌에 앉을 리가 없어요.”
놈들은 나의 우답을 증명하듯 큰 덩치를 일으켜 비행에 올랐다. 셀 수없이 많은 기러기였다. 주문도의 기러기는 다랑구지 대빈창 들녘의 떨어진 낱알이나 봉구산자락 경사진 밭의 사람 손을 타지못한 잔챙이 고구마나, 연작장애 방지용으로 뿌려진 녹비작물 보리의 새싹이 녀석들의 주식이었다. 난데없이 갯벌에서 어슬렁거리며 소요하는 기러기. 혹시 녀석들은 파래같은 해조류를 섭식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은 시인 김주대의 詩書畵集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잡다가 눈에 들어 온 「눈」(55쪽)의 전문이다.
처음 본 네 눈에서 / 어릴 적 고향마을을 찾아 / 초승달 물고 날아가는 / 기러기를 보았다 / 네 눈길 본 날 / 날지 못하던 내 몸속 / 무수한 기러기들이 / 어머니와 누이의 마을을 찾아 / 네 눈 속으로 / 서둘러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다 같이 없었으면서도 / 다 같이 행복했던 평온한 마을 / 잃어버린 마을이 / 너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니 / 그날 한동안 푹해졌다 /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너의 / 고향의 저녁 같은 눈빛 속에는 / 기러기 떼 / 기러기 떼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집 새끼 고양이 - 6 (0) | 2017.03.09 |
---|---|
청구회 추억 (0) | 2017.02.27 |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2 (0) | 2017.01.23 |
뒷집 새끼 고양이 - 5 (0) | 2017.01.19 |
진돌이는 진돗개다. (0) | 2017.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