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돌보시느라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병원을 나설 준비를 진작 마치고 마음이 조급해진 간병인 손에 선물세트를 안겼습니다. 지난 설에 작은형이 섬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두 개의 선물세트가 서랍장 구석에 여적 놓였었습니다. 어머니 병문안을 오면서 하나를 챙겼습니다. 우리 동포 조선족에 대한 마음 한 구석 측은지심이었으리라. 위 이미지는 5월 2일 새벽 6시. 서울 인근의 위성도시 대학병원 정문 로비에서 휠체어에 앉아 길 건너 아파트 군락을 바라보는 어머니 뒷모습입니다.
이날 아침 회진을 도는 의사께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가 퇴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술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의외로 선생은 선선히 들어주셨습니다. 퇴원수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약을 타고 외래진료 날짜를 지정받았습니다. 섬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얼굴에 엷은 웃음이 머물렀습니다. 아침을 거른 나는 이른 점심으로 어머니와 냉콩국수를 마음에 두었지만 음식점 사정으로 간짜장으로 만족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진돌이는 어제 나의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밥그릇과 사료그릇 모두 싹싹 핥아 설거지를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퇴원을 서두른 이유는 ‘병원이 병을 키운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병상 옆 장의자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잠 한숨 이루지 못했습니다. 5인 병실의 병자들은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환자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와 간병인들의 날이 밝도록 이어지는 코골이 소리로 눈을 붙일 수 없었습니다. 간병인 5인은 모두 조선족이었습니다. 간병인 하루 일당은 여자는 7만원, 남자는 10만원입니다. 어머니의 간병인은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집이 두 채였고 가게도 한 채 임대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돈 욕심은 간병인이라는 고된 일을 놓을 수 없었겠지요.
구심력(求心力, centripetal force)은 물체가 원운동을 지속하도록 운동 방향을 계속하여 바꿔 주는 힘을 말합니다. 고교 때 저는 어머니께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모시겠다.”
7살 때 밖에서 놀다 집으로 뛰어 들어와 울면서 하는 말이,
“엄마 다른 애들은 학교 가는데 왜 나는 학교 안 보내줘.”
“한살 더 먹어야 학교에 갈 수 있어. 내년에 보내줄께.”
어린 나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놀았다고 어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대학을 마친 막내에 대한 어머니의 은근한 자랑이십니다. 초등학교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내가 어머니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학교에 앉아있으면 엄마와 아버지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
어머니는 막내의 이 말을 듣고 다시는 새끼들 앞에서 지아비와 싸우는 일이 없었습니다. 남편의 폭력을 묵묵히 온 몸으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저녁을 매식하고 병동 출입문을 밀치는데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나는 3년 더 살면 여한이 없겠다. 자식 셋이 너무 잘해 죽기가 아깝다.”
어머니의 진심이었습니다. 5인실 병동. 정형외과 할머니 환자들은 입버릇처럼 “얼른 죽어야 할 텐데.” 타령이 한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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