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혹시 ‘바실리스크 오리’가 아닐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바실리스크도마뱀은 일명 예수도마뱀으로 물 위를 달릴 수 있습니다. 중앙아메리카 코스타리카에 서식하는 도마뱀으로 0.25초 만에 다섯 걸음을 떼는 순발력으로 물 위를 달린다고 합니다. 위 이미지에서 오리 한 놈은 물 위에 떠있고, 한 놈은 막 이륙하여 힘차게 날개짓을 합니다. 흰뺨검둥오리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눈에 뜨이는 텃새입니다.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 텅 빈 겨울 벌판에서 녀석들은 사촌격인 천둥오리와 무리를 이룹니다. 날이 따듯해지면 천둥오리는 북녘으로 날아가지만 녀석들은 무논을 거쳐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 물장구질에 여념이 없습니다. 벼가 자라 마음대로 물놀이를 할 수 없을 즈음 녀석들은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이미지는 저수지나 연못처럼 보이지만 막 써레질이 끝난 무논입니다. 봉구산 자락을 따라가는 옛길과 다랑구지 들녘의 가운데 구부렁길이 만나는 대빈창 마을 초입 삼거리 논배미입니다. 아침 산책에서 휴대폰을 들 자 눈치 빠른 한 놈은 이륙을 했고, 둔한 놈은 물에서 걷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고를 이를 때 ‘오리가 한가롭게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 밑의 발은 쉴 사이 없이 움직여 헤엄을 치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미지의 오리도 쉴 사이 없이 물장구질을 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무논의 물 깊이는 오리의 발갈퀴가 땅에 닿습니다. 녀석은 지금 헤엄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서 걷고 있습니다.
주문도 무논의 주인이 흰뺨검둥오리라면 이웃섬 볼음도는 저어새입니다. 민통선 볼음도는 논 면적의 4/5를 우렁이로 제초하는 친환경농법으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작년 200년만의 혹독한 가뭄으로 우렁이농업은 1/5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저어새는 어김없이 볼음도를 찾아와 주걱 같은 부리로 무논의 곱게 써레질된 논바닥을 훑고 있습니다. 어느 해 주문도 배너미뜰은 모내기를 두 번 했습니다. 물을 깊게 잡은 모내기 한 논을 흰뺨검둥오리들은 수영장으로 착각했습니다. 활주로에 내려앉는 비행기 흉내를 내듯. 애들이 워터파크 미끄럼틀을 타듯. 모들이 뽑혀 물 위에 둥둥 떠다녔습니다. 섬 농부들은 못자리를 폐그물로 빙 둘러 울타리를 칩니다. 흰뺨검둥오리들이 모판 흙속에 묻힌 볍씨를 헤집어 못자리를 망쳐놓기 일쑤입니다. 농부들의 마음은 오리들의 뺨이 얼얼하도록 후려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흰뺨검둥오리는 뺨이 하얗게 질린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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