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를 대빈창 해변에 풀어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〇 〇 네가 달라고 그래서요.”
텃밭을 일구는 모퉁이집 안주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가 말끝을 흐립니다. 대빈창 해변 제방길가에서 도망치는 절름발이를 토진이가 쫓고 있습니다. 이런 걸 두고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제대로 듣지 못한 〇 〇 씨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그이도 상합을 캐러 나갈 적마다 홀로 노는 토진이가 안쓰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천방지축 토돌이는 산중에서 도(?) 닦느라 두문불출입니다. 사람 손에 키워지던 어린 시절 한 배 오빠가 죽자 토진이는 대빈창 해변에 내버려졌습니다. 용케 야생의 삶을 살아오면서 집토끼 토순이를 만났으나, 그는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토진이는 외로움에 사무쳤는지 모릅니다. 상처(喪妻)한 불구자 절름발이에게 적극적인 대시를 시도합니다. 야생이 낯선 절름발이는 어리둥절 토진이를 피해 달아나기 바쁩니다. 토진이는 숫처녀입니다. 홀아비 절름발이가 딱한 자신의 사정을 모르는 듯합니다. 혹시 토진이가 야생의 삶을 3년간 이어 온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주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휴일 입원을 하십니다. 주초 고관절 수술을 예약했습니다. 토진이의 안부가 궁금해 이른 아침 대빈창 산책에 나섰습니다. 자욱한 희뿌연 안개너머 희끗한 물체가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서니 토진이와 절름발이였습니다. 녀석들은 숨박꼭질을 하는 것처럼 쫓기며 쫓습니다. 길가에 새로 돋는 싹들을 뜯어먹다 놀기를 반복합니다. 삼태기 형국 대빈창 해변은 녀석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빠짐없이 하루 두 번 마주쳤던 토진이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나를 보자 예의 기지개를 켭니다. 앉은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토진이의 잔등을 쓰다듬습니다. 토진이의 작은 몸뚱이는 따듯했습니다. 녀석들이 하늘이 부여한 생을 아무 탈 없이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머니가 마루 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현관문을 밀치자 묻습니다.
“토끼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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