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볼음도의 맛

냉면그릇에 막 지은 흰쌀밥과 윤기가 흐르는 밴댕이회가 넉넉하게, 싱싱한 야채가 잘게 채 썰어져 올려 졌습니다. 밑반찬은 꼴뚜기젓과 마른 망둥어찜, 김장김치가 먹음직스럽습니다. 초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숟가락에 따라 골고루 비볐습니다. 한숟가락 그득 입안에 넣자 아이스크림 녹듯 입안에서 사라졌습니다. 말그대로 꿀맛을 혀의 감각으로 느낍니다. 씹을 새도 없이 밴댕이회 비빔밥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한그릇 뚝딱입니다. 글을 읽는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찬바람이 시작되는 절기에 싱싱한 밴댕이회는 어불성설입니다. 강화도 밴댕이는 보리 여무는 무렵이 제철입니다. 제가 막 점심을 찾은 집은 볼음도 밥집 〈섬마을〉입니다. 주인장은 오뉴월 건강망에 든 밴댕이를 급속냉동시켜 비빔밥의 으뜸재료로 ..

아차도 밤나무 숲길

겨울밤 창밖에 눈은 내리는데 / 삶은 밤 속에 밤벌레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 죽은 태아처럼 슬프게 알몸을 구부리고 / 밤벌레는 아무 말이 없었다 // 그날부터 나는 삶은 밤은 먹지 않았다 / 누가 이 지구를 밤처럼 삶아 먹는다면 / 내가 한 마리 밤벌레처럼 죽을 것 같아서 / 등잔불을 올리고 밤에게 용서를 빌었다 글머리를 정호승의 「밤벌레」로 시작했습니다. 나의 나무로 점찍어둔 봉구산 초입 밤나무의 알밤이 저절로 떨어져 땅바닥에 뒹굴었습니다. 바구니 속 알밤마다 영락없이 몸이 통통하고 보유스름한 밤벌레가 기어 나옵니다. 꿀꿀이바구미의 애벌레라고 합니다. 성충은 쌀바구미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밤이 익기 전에 밤송이 안쪽에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이미지는 아차도 마을 뒷산의 밤 과원을 관통하는 숲길입니다...

우禹 임금도 어쩔 수 없다.

중국 신화시대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 임금은 황하의 치수를 잘한 덕에 순(舜)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판 우(禹) 임금이 주문도에 나타나도 어쩔 수 없이 담수를 바다로 쏟아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문도(注文島)는 강화도의 부속도서로 면적이 4.31㎢밖에 되지 않는 작은 외딴 섬입니다. 주문도의 논 면적은 114ha 입니다. 자연부락 느리와 진말의 경계지점 고갯길의 주문도저수지 물은 진말 앞 벌판으로 흘러 내립니다. 저수지는 섬에 쏟아진 빗물이 고인 제방 밑 수로의 물을 거꾸로 퍼 올릴 수 있는 양수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올여름은 기상청 관측이래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이 지속되었습니다. 느리와 대빈창 마을을 마주보는 들녘은 60여 년 전 바다를 막은 간척으로 이루어진 다랑구지입니다..

NLL의 섬 말도의 벽화

말도에 대해 처음 들은 지가 20여년이 다 되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간 개념이 희박하여 흘러간 세월의 흐름을 떠올릴 때 애를 먹습니다. 봄이 오기 전 낙도를 방문하여 한해 영농을 준비하는 농민의 농기계수리를 돕는 동료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시절 말도는 자가발전기로 전기를 일으켜 생활했다고 합니다. 동료는 초저녁 두서너 시간 전기의 혜택을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은 오지 않고 밤이 깊어지면 촛불을 켰다고 합니다. 달랑 세 가구 뿐 인 섬은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선장이라는 감투(?)를 모두 썼습니다. 얘기를 들으며 저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삶을 떠 올렸습니다. 말도는 NLL 선상에 위치하여 강화도와 서도(西島)를 운항하는 카페리호가 접안할 수 없었습니다.제가 말도와 인연을 맺은 지 10여년이..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21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얼치기 생태주의자  김씨(金氏)는 두어 자 글로써 토자(兔者)에게 고(告)하노니······.지난여름 폭염은 역대 최악으로 지독한 살인 더위였습니다. 기상청 통계작성 이후 모든 더위 기록을 갈아 치웠습니다. 전국 평균 폭염일수(일 최고기온 33도 이상) - 31.5일, 연속 최장 폭염일수 - 37일, 열대야(최저기온 25도 이상) 일수 - 17.7일, 일 최고 기온 극값(홍천 41도), 최저 기온값(강릉, 30.9도), 서울의 최저기온이 30.3도, 30.0도를 나타내 기상관측 역사상 처음으로 30도를 넘는 초열대야가 연달아 나타났습니다. 폭염사망자는 4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위 이미지는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한 달 전의 토진이 모습입니다..

전설의 족장이 온다

태풍전야는 어떤 엄청 난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한 상태를 말합니다. 주문도 느리 선착장의 태풍전야 모습입니다. 선외기들이 해상크레인에 의해 물량장에 올려 졌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태풍이 오면 배가 뭍으로 올라 옵니다. 강화도와 서도(西島)를 오가는 여객선 삼보 12호는 22일 주문도발 2시배로 나가 소식이 없습니다.  제19호 태풍 솔릭(SOULIK)은 미크로네시아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전설속의 족장’을 칭합니다. 태풍은 보통 나선팔로 구름을 몰고 다닙니다. ‘솔릭’은 원통형의 모양과 또렷한 눈을 가진 도넛 태풍(또는 타이어 태풍)으로 불리는 발생 확률이 1 ~ 3%로 매우 드문 태풍이었습니다.기상청의 태풍 진행 예보는 한반도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2010년 9월 2일 충남 서..

뒷집 새끼 고양이 - 17

위 이미지는 열흘 전 텃밭 정경입니다. 어머니가 텃밭으로 내려서는 경사면의 폭염에 늘어진 호박덩굴을 돌보고 있습니다. 노순이가 들깨 몇 포기뿐인 맨 땅이 드러난 두둑 한가운데서 혼자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하루 종일 강아지처럼 어머니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녔습니다. 맨 땅이 드러난 텃밭 네 두둑은 지금 부직포가 하얗게 씌어졌습니다. 엊그제 먼동이 터오기 전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텃밭에 내려섰습니다. 친환경 거름을 한 두둑에 두 포대씩 뿌렸습니다. 동력용 농기계가 없어 삽으로 네 두둑을 일렀습니다. 십여 년 넘게 가족끼리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어머니의 몸이 무거워지셨습니다. 누이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은 형은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고된 도금작..

다랑구지가 타들어가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폭염 일수는 정확히 30일을 채웠고, 열대야는 26일째 지속중입니다. 우리나라만이 겪는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유럽,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북반구 일대가 온통 불덩어리입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지 모르겠습니다. 기후학자들은 현재의 기후변화가 지속되어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의 자정작용이 멈추고, 인류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어쩔 수없이 파국으로 치닫는 시기가 가까웠다고 경고합니다.그린란드의 빙하가 사라지면 멕시코 난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더 많은 열을 받은 남빙양은 남극 빙하를 녹이고.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메탄가스가 풀려나와 지구온난화에 가속도가 붙는. 자연현상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지구가 탄소를 흡수..

강남 간 제비는 왜 오지 않을까?

가난한 흥부는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 주었습니다. 다음해 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박씨를 흥부에게 떨어뜨렸습니다. 박씨를 심자 커다란 박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흥부 가족이 박을 타자 그 속에서 쌀과 돈과 보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는 보은 선물이었습니다. 요즘 시대로 말하면 흥부는 엄청난 금액의 로또에 당첨되었습니다.고전소설 『흥부전』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인들의 정서에 가장 친근한 새가 제비였습니다. 흔히 제비는 삼짇날에 강남에서 돌아와 백로를 전후해 이 땅을 떠나는 여름 철새입니다. 가을이 오면 한 마을의 제비떼는 땅거미가 내릴 즈음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전깃줄에 일제히 앉았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면 제비는 서너 개의 알을 낳고 부화시켰습니다. ..

뒷집 새끼 고양이 - 16

뒷집 고양이 수놈 재순이와 암놈 노순이, 검돌이의 성장기가 어느덧 햇수로 삼년이 지나고 열여섯 번 째 글을 맞았습니다. 녀석들은 어른이 되었고, 암놈 노순이는 세배 째, 검돌이는 두배 째 새끼를 낳았습니다. 노순이는 네 마리를 낳았는데, 어미를 닮은 노란 줄무늬 새끼 두 마리는 혼자 사시는 마을 할머니께 분양되었습니다. 검돌이는 검정고양이 세 마리를 낳았습니다. 조심성 많은 녀석이라 해가 떨어져야 새끼들을 바깥나들이 시켜 주인도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미지는 우리집 출입문 앞입니다. 아직 어미 곁을 떠나지 않은 흰 바탕에 노란 얼룩무늬 새끼 고양이 한 마리와 노순이가 보입니다. 노순이가 새끼 한 마리를 우리집으로 데려와 개사료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마루에서 인기척을 내지 않고 고양이 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