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소만(小滿)을 사나흘 앞둔 물을 얹은 대빈창 다랑구지입니다. 소만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로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듭니다. 햇빛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주문도의 소만은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되는 연중 가장 바쁜 절기입니다. 고맙게 사흘 내내 비님이 오셨습니다. 저수지가 없어 물이 귀한 대빈창 다랑구지를 흠뻑 적셨습니다. 사흘간 강우량은 72mm나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우리나라 연평균 강우량은 1200mm 입니다. 근래 서해의 작은 외딴섬에 내리는 연중 강우량은 500mm 안팎이었습니다. 벼농사는 한자로 수도작(水稻作)이라 할 만큼 물을 많이 쓰는 농사입니다.
대빈창 다랑구지는 저수지가 없습니다. 장마철 차츰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제방 밑 논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물때가 만조에 가까워지면 벼 포기가 물에 잠겨드는 것을 보면서도 배수갑문을 열수가 없습니다. 바닷물이 논으로 역류하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물때가 바뀌기만을 속수무책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닷물이 쓸면서 배수갑문을 열고, 아까운 담수를 바다로 흘려버립니다. 주문도의 큰 마을 진말과 볼음도는 저수지 물로 농사를 지어 가뭄이 들어도 농부들의 시름이 그다지 깊지 않았습니다. 모내기철 부족한 강우량으로 대빈창 농부들의 주름살이 깊게 파였습니다.
대빈창 다랑구지는 바다를 막는 간척으로 일군 들녘입니다. 하늘이 도왔는 지 지하수가 풍부하여 그동안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미지의 전봇대가 말해주듯 농업용 전기로 모터를 돌려 지하수를 퍼 올렸습니다. 좋은 시절은 다 갔습니다. 이제 관정을 뚫어도 지하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도 섬들이 겪는 물 부족으로 인한 불편과 고통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이웃 섬 아차도는 상수도에서 짠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닫았던 우물의 뚜껑을 다시 열었습니다. 대빈창 농부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합니다. 경지정리는 차치하고, 저수지 축조가 우선 시급합니다. 장마철 바다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아까운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절실합니다.
대빈창 마을에서 저수지를 축조할 맞춤한 지형은 ‘연못골’ 밖에 없습니다. 봉구산자락 옛길을 따라가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길은 야트막한 구릉입니다. 구릉과 바닷가 산날맹이 사이의 골짜기가 ‘연못골’입니다. 지금은 계단식 논이 들어섰습니다. 주문도에 터를 잡은 선조들은 먼 훗날을 예견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골짜기를 논으로 일 굴 후손들의 청맹과니에 땅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모릅니다. 제방너머 주문도 바라지, 볼음도 물엄구지, 아차도 너배다리 길목의 삼각형 모양의 바다로 골안개가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모내기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시름을 덜어준 단비가 반갑다는 듯 무논의 개구리 울음소리가 천지간에 가득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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