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진이가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오랜만에 길가에 나와 마음껏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들고양이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지 모르겠습니다. 토진이 아지트에 얼씬거리던 검은 바탕에 흰 반점의 고양이와 노란 바탕에 줄 무늬 녀석이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영리한 토진이가 놈들의 행동반경을 미리 파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토진이가 나이가 들수록 조심성만 늘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던 녀석이 뒤돌아서 산기슭으로 깡총깡총 뛰어 달아납니다. 녀석에게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지 경계심을 풀고, 여린 새싹에 코를 박고 폭풍흡입 중입니다. 오랜만에 토진이의 선명한 이미지를 건졌습니다.
토진이가 만 다섯 살이 넘었습니다. 토진이의 귀토야생(歸兎野生)은 한마디로 탐진치(貪瞋痴)를 경계하는 삶이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심(三毒心)으로 탐은 탐욕을, 진은 분노를, 치는 어리석음을 가리킵니다. 녀석은 욕심을 경계합니다. 동무하라고 풀어 준 수놈토끼 토돌이는 대빈창 마을 텃밭의 채소를 탐하다, 사람들 손에 명을 달리하였습니다. 토진이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엽록소 없는 마른 풀로 허기를 달랩니다. 녀석은 자기 분수껏 대빈창 제방 끝 막힌 삼태기 지형에서 고라니와 다투지 않고 자연이 베풀어 준 가난한 식량에 만족할 줄 압니다. 토진이는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친구하라고 풀어놓은 토순이는 야생 진드기에 희생당했습니다. 토진이는 모래가 드러난 산기슭에 몸을 뒹굴며 스스로 진드기를 떼어내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피서철 성수기 대빈창 솔숲 야영장에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따라온 애완견과 반려묘가 눈에 뜨이면 재빨리 산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토진이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무언의 훈계 였습니다. 토진이와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저의 삶에 힐링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애완 토끼 토진이가 기특합니다. 녀석을 만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드립니다. 토진이가 하늘이 부여한 생을 온전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토진이가 오늘도 산기슭에서 바다를 향해 앉아, 풀을 연신 씹고 있었습니다. 나이 드신 대빈창 어르신네들이 편찮으신 허리를 갯벌에 굽히고 상합과 바지락을 캐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봅니다. 바야흐로 천지간이 푸르름으로 가득한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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