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花階)는 우리나라 전통 정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입니다. 왕궁, 사찰, 서원, 정원, 양반 가옥 등에서 뒤편 동산의 비탈진 면에 사고석이나 막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궁궐 후원의 으뜸은 창덕궁 낙선재 뒤뜰입니다. 창경궁 경춘전 화계와 경복궁 교태전 후원 아미산도 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위 이미지는 이틀 전 아침 10시경의 우리집 화계(花階) 정경입니다. 일주일 전 밤새 부슬비가 줄금거렸습니다. 강우량은 고작 3mm로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땅거죽도 채 적시지 못한 봄비였습니다. 비맛을 본 풀과 나무의 꽃과 새잎이 싱그러워 보였습니다.
절기는 곡우(穀雨)를 지나 입하(立夏)로 향하는 계절입니다. 농부들의 일손은 못자리를 꾸미느라 분망합니다. 우리집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봉구산자락에 바투 등짝을 대고 있습니다. 집 뒤 봉구산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고갯길은 슬라브 옥상과 키 높이를 같이 했습니다. 뒤울안 경사면에 막돌을 쌓아 2층 계단으로 꾸민 우리집 화계(花階)는 전 주인의 손길이 많이 묻었습니다. 위 사진에서 회양목 울타리가 고개길과 뒤뜰을 경계 지었습니다. 복숭아꽃이 만발했고, 수선화가 무리지어 피어났습니다. 줄기와 가지의 껍질에서 바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박태기나무도 보입니다.
바깥 수돗가에 자리 잡은 명자나무가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철나무의 잎은 한결 윤기를 더하고, 게으른 감나무도 이제 새잎을 하나둘 내밀었습니다. 메마르고 앙상한 줄기는 공조팝나무입니다. 상사화가 잎줄기를 부채살처럼 펼쳤고, 수국은 줄기 가득 새순을 달았습니다. 참취와 둥굴레의 여린 순이 투명한 연두빛입니다. 볼음도에서 얻어 온 금낭화는 추위에 약한 지 작년부터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이웃집 할머니께 얻은 천남성은 가장 늦게 새순을 내밉니다. 매발톱꽃, 작약, 원추리, 나리꽃, 돌나물, 옥잠화, 국화, 도라지, 곰취, 개양귀비 ······.
텃밭의 쪽파가 봄햇살을 받아 한껏 푸르렀습니다. 화계 1단은 어머니의 손길로 토종갓과 시금치 밭으로 일구어졌습니다. 봉구산을 오르는 이들은, 우리집 화계를 보고 누구나 탄성을 내지릅니다. “만물상이라고” 어머니가 양지바른 뒷산 무덤에 무더기로 피어난 할미꽃을 몇 포기 캐와 심었지만 매번 죽고 말았습니다. 할미꽃은 뿌리가 곧고 길게 자라는 다년생으로 뿌리 끝에 조그만 상처만 입어도 죽는다고 합니다. 이식(移植)하기 힘든 꽃입니다. 말도에서 얻은 수선화가 장하게 자리를 늘였습니다. 돌아오는 가을 알뿌리를 거두어 터를 늘려 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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