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0

회상回想

어머니는 분해하셨습니다. 작년 초겨울, 우리집 뒤울안 화계花階에 심겨진 둥굴레가 고약한 누군가의 손을 탔습니다. 어머니는 여름 한철, 화계 꽃나무 주변 우거진 풀에 낫질을 하셨습니다. 풀숲에 숨어있던 뱀에 놀란 어머니가 낫질을 중동무이하는 바람에 잡풀에 숨어있던 둥굴레는 용케 도둑의 손길을 피했습니다. “내년 봄에 캐 차 끓이려고 했는데······” 2008년 11월 2일 나는 김포 한들고개의 옛집에서 어머니와 짐을 바리바리 꾸려 주문도 대빈창가는 언덕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다음해 봄 봉구산 외진 산사면을 타다 둥굴레 군락을 발견합니다. 포대에 둥굴레를 캐오자 어머니는 둥굴레 뿌리를 손질하여 얕은 불에 볶아 둥굴레 차를 끓이셨습니다. 잔챙이 뿌리를 마당가 텃밭 한구석과 화계에 심었습니다. 둥굴레의 번식..

2020년 경자년, 다시 맑은 눈으로 세상을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쥐띠해입니다. 위 이미지의 벽걸이 달력은 신영복 서화달력입니다. 근 10여년 만에 내 방을 장식했습니다. 어느 해부터 온라인 서적에서 자취를 감춘 달력을 아쉬워하며 그동안 이철수 판화달력을 걸었습니다. 2019년 연말에 선생을 기리는 〈사단법인 더불어숲〉을 방문했습니다. 반갑게 새해 달력 주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함께 동봉된 탁상달력은 사무실 새내기에게 선물했습니다. 故 신영복 선생을 공부하라는 부탁과 함께. 후원하는 생태환경 격월간지 『녹색평론』이 2008년 1 - 2(98호)부터 어깨를 겨누었습니다. 책장의 사기열전과 서승·서준식·서경식 형제의 책이 나란합니다. 일명 ‘목소리 소설’이라 불리는 노벨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이 모였습니다.달력의 달수를 가리키..

어미닭과 병아리

고양이 그려서 세상에 유명하니 / 변씨는 이로써 ‘변고양이’라 불렸는데 // 이번에 또다시 병아리 그려내니 / 가는 털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 // 어미닭은 까닭 없이 잔뜩 노해서 / 안색이 사납게 험악한 표정 // 목털은 곤두서서 고슴도치 닮았고 / 건드리면 꼬꼬댁 야단맞는다 // 쓰레기통 방앗간 돌아다니며 / 땅바닥을 샅샅이 후벼파다가 //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척만 하고서 /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 참아내네 // 아무것도 없는데 놀라서 허둥허둥 / 올빼미 그림자 숲 끝을 지나가네 // 참으로 장하도다 자애로운 그 마음 / 하늘이 내린 사랑 그 누가 빼앗으랴 // 병아리들 어미 곁을 둘러싸고 다니는데 / 황갈색 연한 털이 예쁘기도 하여라 // 밀랍 같은 연한 부리 이제 막 여물었고 / 닭벼슬은 씻..

모노크롬monochrome

한때 나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책 전부를 손에 넣었다. 고교시절 수업이 끝나면 밤늦게까지 미술실에서 데생을 그렸다. 고교입학 후 첫 미술시간 새로 오신 선생은 스케치북에 마티스의 〈금붕어〉를 그리게 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나는 그림을 곧잘 그렸다. 미술부로 스카우트되어 학교 대표로 각종 회화대회에 참가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화가를 꿈꾸었다. 미술선생이 다른 학교로 떠났고, 나의 캔버스에 대한 열정도 시들해져 목탄을 손에서 놓았다. 나이가 들고 아쉬움을 미술대중서로 달래고 있는지 모르겠다.내가 모노크롬 도판을 처음 접한 책은 20여 년 전 『산정묘지』의 시인 조정권의 예술기행산문집 『하늘에 닿는 손길』(문학동네, 1994)을 통해서였다. 시인은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예술종합지 의 ..

석모도 어유정항

어유정(魚遊井)은 말그대로 고기가 많이 몰려 노닌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지명 유래를 검색하고 조금 허탈했습니다. 우물(井)에서 부산 금정(金井)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금정(金井)산은 이 우물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금정산 정상 돌 위에 샘이 있는데 항상 마르지 않는 이 우물은 물빛이 황금색으로 빛난다.”라고 전합니다. 샘의 크기는 남북이 147㎝, 동서가 125㎝이며 깊이가 51㎝에 이릅니다. 이름처럼 물이 솟아나는 게 아니라 빗물이 고인 것으로 웬만해서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유정은 봄에 꽃게, 새우가 여름에 병어, 밴댕이가 가을에 꽃게, 젓새우가 풍어를 이루었습니다. 어유정의 젓새우는 명성이 자자한 강화도에서 가장 상품으로 꼽혔습니다. ..

화도 선수항

강화도는 여말까지 강화 본도와 마리산지로 이루어진 고가도(古家島)로 분리되어 있었다. 당시 이들 두 섬 사이의 가릉포와 선두포 사이로는 조수가 통하였다. 그러므로 초지포구(草芝浦口)의 선박은 강화도 서남단을 우회하지 않고 이 수로를 통하여 석모리까지 갈수 있었다. 지리학자 최영준의 논문집『국토와 민족생활사』(한길사, 1997)의 「강화지역의 해안저습지 간척과 경관의 변화」에서 발췌했다. 여기서 석모리는 삼산면소재지가 있는 석모도의 석모리를 가리켰다. 하나의 섬이었던 고가도는 간척사업으로 강화도와 한덩어리가 되었다. 옛날 배가 오가던 수로는 현재 드넓은 가릉포 벌판이다. 오늘 서도(西島)행 삼보12호의 2항차 출항지는 화도 선수항이었다. 나는 차를 몰고 양도면소재지를 지나 가릉포 들녘을 일직선으로 가르는 ..

쓸쓸한 계절

◇ 3. 1 - 10. 311항차 - 주문도 출항 7:00 / 2항차 - 내가 외포항 or 화도 선수항 출항 16:10 ◇ 11. 1 - 11. 15일경 일요일까지1항차 - 주문도 출항 7:00 / 2항차 - 내가 외포항 or 화도 선수항 출항 15:40 ◇ 11. 15일경 월요일부터 - 익년 2. 28(29)1항차 - 주문도 출항 7:30 / 2항차 - 내가 외포항 or 화도 선수항 출항 15:10 주문도가 출항지인 삼보 12호는 년중 배시간이 세 번 변경됩니다. 카페리는 하루 두 번 강화도와 주문도를 왕복 운항합니다. 주문도와 아차도의 좁은 바다에서 정박하고 출항하는 1항차를 섬사람들은 아침배 또는 첫배라 부릅니다. 배는 아차도와 볼음도를 둘러 강화도로 향합니다. 석모도 어유정항이 뱃전에서 건너다보이..

은행나무의 안녕을 바라다.

위 이미지는 볼음도저수지에 떠 있는 탐조대로 가는 나무테크에서 잡은 천연기념물 제304호 볼음도은행나무입니다. 벼랑위의 정자에 올라서면 바다건너 북녘 땅이 코앞입니다. 강화도나들길 13코스(서도 2코스)인 볼음도길은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섬을 한바퀴 도는 총길이 13.6km로 3시간30분이 걸립니다. 먼 섬을 찾은 도보객들이 섬을 한 바퀴 일주하며 은행나무 공원에서 발품을 쉬었습니다. 천연기념물답게 대접이 극진합니다. 때 아닌 날벼락을 피할 수 있게 피뢰침이 노거수老巨樹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절기는 바야흐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입니다. 저수지 가장자리의 수초와 연꽃도 누렇게 제빛을 잃어갑니다. 정자를 오르는 둔덕에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가을이 깊어가면서 제 세상을 만난 듯 앞다투어 꽃을 피었습니다. 눈치..

누가 밋밋한 바다를 바라는가

서해(西海)의 면적은 40만4,000㎢ 넓이입니다. 남북이 1,000㎞이고, 동서는 700㎞의 길이입니다. 20 ~ 80m 정도의 수심이 얕은 바다로 최대수심은 103m이고, 평균수심은 44m입니다. 황하(黃河)가 운반한 황토로 바닷물이 항상 누렇게 흐려 황해(黃海)라고 부릅니다. 신생대 제4기 최후 빙하기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이상 낮아 중국대륙과 연결된 평탄지형이었습니다. 해빙기가 되면서 차츰 해수면이 높아져 바다가 되었습니다. 신생대 제4기는 홍적세(1만 ~ 160만 년 전)와 충적세(현재 ~ 1만 년 전)로 구분합니다. 빙하시대는 지구 전역에 걸쳐 기후가 반복적으로 변했습니다. 현재 서해의 섬들은 빙하기 때 평탄지형에 돌출된 산줄기였습니다. 바닷물이 밀려들며 삼산면의 석모도, 미법도, 서검도..

한로寒露의 배꽃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 땅에서 의무 교육을 받은 이라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고려말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의 유명한 시조의 전문이다. 여기서 이화(梨花)는 배꽃을 가리켰다. 〈이화에 월백하고〉는 강화도 쌀 브랜드의 하나로 또한 귀에 익숙했다. 강화도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과일 중 하나가 강화섬배로 맛이 달아 대만으로 수출하고 있다. 4월 중순 배꽃이 만발하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강화배꽃음악회가 배꽃이 분분이 날리는 과원에서 매년 열렸다. 한로寒露는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절기로 추분과 상강 사이에 있는 열일곱 번째 절기다. 위 이미지는 한로가 이틀 지난 10. 11일 아침에 담았다. 때아니게 꽃을 피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