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한로寒露의 배꽃

대빈창 2019. 10. 14. 07:00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 땅에서 의무 교육을 받은 이라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고려말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의 유명한 시조의 전문이다. 여기서 이화(梨花)는 배꽃을 가리켰다. 〈이화에 월백하고〉는 강화도 쌀 브랜드의 하나로 또한 귀에 익숙했다. 강화도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과일 중 하나가 강화섬배로 맛이 달아 대만으로 수출하고 있다. 4월 중순 배꽃이 만발하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강화배꽃음악회가 배꽃이 분분이 날리는 과원에서 매년 열렸다.

한로寒露는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절기로 추분과 상강 사이에 있는 열일곱 번째 절기다. 위 이미지는 한로가 이틀 지난 10. 11일 아침에 담았다. 때아니게 꽃을 피운 배나무에 참새 두서너 마리가 날아들었다. 언덕배기 길을 사이에 두고 주민자치센터와 건강관리실이 마주보고 있다. 건강관리실과 마을회관 사이의 밭은 오래 묵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배나무와 자두나무가 제멋대로 가지를 하늘로 뻗쳤다. 바다건너 아차도와 꽃치가 연결된 제방이 길게 누웠다. 배나무가 만물이 생동한다는 봄도 아닌 찬이슬이 내리는 계절에 꽃을 맺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지나는 사람들이 허투로 내뱉는 말처럼 나무가 미친 것인가. 배나무만 계절을 잊은 것이 아니었다. 주문도저수지의 방풍림 벚나무도, 대빈창 해변 산자락의 아까시나무 군락도 꽃을 피웠다.

달포 전 강풍을 동반한 제13호 태풍 링링이 강화도를 관통했다. 나무들은 강제로 잎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다음날 제방에 일렬로 늘어선 벚나무들이 줄기만 남아 저수지 수면이 훤하게 보였다. 대빈창 해변 아까시 숲이 때아니게 헐벗어 을씨년스러웠다. 한 달이 지나고 나무들은 새옷을 입었다. 그리고 꽃을 매달았다. 나무들의 생체시계가 착각을 일으켰다. 식물의 생체시계는 계절의 변화와 기간을 계산해 봄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시점과 해가 짧아 추워지는 겨울에 월동대비 시점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인간이 생체리듬을 통해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듯이 식물에게 환경에 적응해야 할 적당한 때를 알려주는 것이다. 7 - 8년전 눈이 많았던 겨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쌓인 운동장 눈을 너까래로 밀어 경사면에 쌓았다. 한겨울 내내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으면 늦봄이 돼서야 쌓인 눈이 녹았다. 그해 쌓인 눈속에 파묻혔던 영산홍 두 그루가 한 달여 뒤늦게 꽃을 피웠다. 한번 고장난 생체시계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운동장 경사면의 두 그루 영산홍은 지금도 섬의 다른 영산홍에 비해 한 달여 늦게 꽃망울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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