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앙칼진 소녀가 매섭게 할퀴다.

대빈창 2019. 9. 20. 07:00

제가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 터를 잡고 직방으로 마주친 태풍은 네 번째였습니다. 2000년 쁘라삐룬, 2010년 곤파스, 2012년 볼라벤 그리고 2019년 링링이었습니다. 네 번의 가을 태풍은 서해안을 타고 올라와 수도권 아니면 북한을 관통한 후 소멸했습니다. 2019년 제13호 태풍 링링(LINGLING)은 홍콩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소녀의 애칭입니다. ‘링링’은 많은 비를 뿌리기보다 강한 바람을 몰고 와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강풍의 위력은 역대 한반도로 올라 온 태풍 가운데 5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전남 신안 흑산도에서 7일 오전 최대 순간풍속 초속 54.4m(시속196㎞)의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앞서 주문도에 들이닥친 세 개의 태풍으로 입은 우리 집의 직접적인 피해는 단 한번 뿐이었습니다. 2010년 곤파스 때 옥상 슬라브에 설치된 보일러실 조립식 벽체가 날아갔습니다. 보일러를 옥상에서 내려 뒤울안에 새로 집을 마련하고 들였습니다. 우리 집은 대빈창 해변가는 언덕길 정상에 자리 잡아 주문도의 알아주는 바람꼬지입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집이 절묘하게 앉은 것인지 태풍이 몰고 온 강풍은 번번이 우리 집을 비껴갔습니다.

9. 6일 강화도와 서도(西島) 군도(群島)를 오가는 삼보12호는 오후 2시 2항차 주문도 출항을 마지막으로 외포항에 발을 내렸습니다. 도선(島船)은 링링이 지나간 후 9. 8일 오전 9시10분 1항차 외포항 출항을 재개했습니다. 선박 재질이 FRP인 행정선과 어업지도선 4대는 9. 6일 이른 아침에 일찌감치 인천 연안부두로 피양을 떠났습니다. 주문도 어부들은 해양 크레인으로 선외기들을 물량장에 올렸습니다. 덩치가 큰 목선은 하늘로 치솟는 파도와 놀게 닻줄을 늘여 맸습니다. 링링은 7일 오후 2시30분경 강화도를 통과하여 황해 해주에 상륙했습니다. 4개 섬은 앙칼진 소녀 링링이 할퀴고 간 자국으로 몰골이 처참했습니다. 자연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혹독합니다. 고개를 숙여가던 벼 이삭은 흥건한 물 텀벙에 처박혔습니다. 봉구산자락 경사진 밭의 고추, 들깨, 배추, 무, 서리태. 고구마, 땅콩, 도라지 ······ 는 물에 데쳐진 것처럼 시커멓게 늘어졌습니다.

9. 8일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이른 아침 6시30분경 대빈창 산책에 나섰습니다. 산이 머금었다 토해낸 물기로 봉구산 자락은 흥건했습니다. 옛길은 돌풍에 휘말려 줄기에서 꺾어진 잔가지와 나뭇잎이 온통 덮었습니다. 아름드리 참나무의 허리가 꺾어졌습니다. 옆의 소나무가 괜한 날벼락에 상반신을 잃고 옛길을 덮쳤습니다. 어렵게 대빈창 해변 솔숲을 통과해 제방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시멘트 포장 제방 길에 링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백사장의 모래가 날려 바람결을 따라 제방길에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를 그렸습니다. 글을 처음 포스팅할 때 이미지는 태풍 링링이 제방길에 남긴 그림이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9. 11일 대빈창 해변 아침 산책에서 만난 정경입니다. 멀리 무인도 분지도가 비껴 보이는 백사장이 작은 그랜드캐년처럼 보였습니다. 9. 10일 하루에 193mm의 비가 퍼부었습니다. 8월초 막 벼이삭이 패기 시작할 무렵 극심한 가뭄으로 농부들의 가슴마저 시커멓게 타들어갔을 때 년중 강수량은 133mm 이었습니다. 올해 한반도의 기상은 집중호우가 유별났습니다. 현재 총 강수량은 720mm입니다. 엎친데덮친격이고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그나마 간신히 고개를 들고 버티던 나머지 벼이삭도 물괸 논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말았습니다. 안 좋은 일은 떼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곤궁한 농민에게 하늘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달포전 바닥을 드러냈던 저수지는 이마까지 찰랑찰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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