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 아홉 /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 짜기를 나는 안다 /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면우의 시 「거미」의 2연입니다. 먼동이 터오는 아침 산책길에서 거미를 만났습니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봉구산자락 옛길은 경사진 아래위 밭 가운데를 지나는 길입니다. 자연부락 느리와 대빈창 그리고 꽃동네 주민들이 해가 봉구산을 넘어오기 전 밭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낮의 땡볕을 피해 선선한 밤 기온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에 일을 서두르십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을 따고, 참깨를 베고, 무 싹을 솎아주거나, 배추 포트묘를 심었습니다.
대빈창 해변을 가로막은 낮은 둔덕이 코앞이고, 연이어 길다란 대빈창 마을의 집들이 보였습니다. 고추가 심겨진 길가 밭 경계에 고라니 방지용 폐그물이 빙 둘렀습니다. 녀석은 그물을 묶은 기둥 파이프에 거미줄을 쳤습니다. 벌써 집을 완성한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이대자 녀석은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미줄 중심에 녀석이 먹이감을 물고 있습니다. 호랑거미는 먹이가 그물에 걸리면 즉시 다가와 먹이를 물어뜯고, 실로 감아 거미줄 가운데로 옮겨 놓는다고 합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녀석은 거미목 왕거미과의 긴호랑거미였습니다. 산야나 논밭 등의 풀숲에 서식하며 수직으로 둥근 그물을 칩니다. 중앙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가 위협을 느끼면 몸을 흔들어 그물을 진동시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흔한 호랑거미는 검고 노란 얼룩무늬와 배의 붉은 점으로 눈길을 끕니다. 녀석의 거미줄 문양은 아주 독특합니다. 거미줄 복판에 지그재그로 꿰맨 듯 한 흰 무늬를 태극 문양처럼 만들었습니다. 큰 동물이 지나가다 그물을 망가뜨리지 못하게 경고하는 장치라고 합니다.
최근 미국 생물학자들은 곤충, 조류, 포유류, 어류 등 동물 600종의 시력을 비교했습니다. 새들은 2m 밖에서도 거미줄의 지그재그 무늬를 감지해 피할 수 있지만 곤충은 무늬가 거의 보이지 않아 거미줄에 걸려 들었습니다. 걷다가 무심결에 거미줄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큰 동물 영장류로 나는 허공에 걸린 지그재그형의 흰 무늬를 보고 녀석의 아지트를 알아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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