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절기는 경칩(驚蟄)입니다. 경칩은 우수와 춘분 사이에 있는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입니다. 일어난다는 '경(驚)'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자를 씁니다. 글자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입니다. 봉구산자락의 경사진 밭도 봄 햇살에 흙살이 풀어져 부드럽게 보였습니다. 따뜻한 계절이 돌아오자 밭 흙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느리, 대빈창, 꽃동네 3개 자연부락 주민들이 일구는 밭 작물은 대개 고추와 고구마가 주종입니다. 참깨, 들깨, 토란, 감자. 양파, 대파, 서리태, 메주콩, 녹두, 팥, 조, 수수, 김장채소를 돌려짓기 합니다.
산자락과 밭의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 대빈창가는 옛길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출렁거리며 해안에 닿았습니다. 요즘 섬 주민들의 일손은 울타리 손질로 분주합니다. 작년 9. 7. 강화도를 관통한 제13호 태풍 링링으로 고라니 방책용 폐그물이 하나같이 찢어지거나 쓰러졌습니다. 작물을 심기 전에 밭가를 두른 폐그물을 단도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새순을 탐하는 고라니 등쌀에 작물이 남아날 리 없기 때문입니다. 반영구적인 철책을 두르면 좋겠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섬 주민들은 헤진 정치망 그물로 밭가를 두릅니다. 주말이면 대처로 나간 자식들이 섬을 찾아 노부모의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위 이미지 좌측하단의 폐그물에 갇힌 참새 이미지는 풀색으로 초여름인 것 같습니다. 날이 궂지 않은 이상 아침저녁 산책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십여 년 이상 이어진 산책에서 내 손으로 지옥(?)에서 탈출시킨 참새는 어림잡아 백여 마리 이상 될 것입니다. 한 해에 십 여 마리 이상을 방생한 숫자입니다. 고라니방지용 폐그물은 참새에게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날 길 없는 지옥이었습니다. 녀석들은 모이를 쫓아 종종 걸음치면서 스스로를 지옥에 가두고 있었습니다. 직박구리, 곤줄박이, 콩새, 멧새, 박새, 노랑턱멧새. 멧비둘기. 까마귀, 까치. 휘파람새, 물총새, 종달새 등 외딴섬의 수많은 새 중에서 유독 참새만이 폐그물에 갇혔습니다.
산책을 재촉하는 나의 발걸음에 놀라 참새는 폐그물 안에서 더욱 버둥거렸습니다. 좁은 틈새에서 본능적으로 날개 짓을 하지만 녀석은 제 풀에 지쳐 그물에 매달려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일손이 달리는 농부들은 찢어진 그물을 철거하지 않고 새 울타리를 덧댑니다. 이중그물을 설치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참새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야생식물의 씨앗을 따라가며 쪼다 스스로를 폐그물에 가두었습니다. 먹이쪼는 생리적 습성으로 녀석들은 자기도 모르게 지옥의 문턱을 넘나들었습니다. 오므린 손에 갇힌 작은 참새의 콩닥거리는 심장박동과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손바닥에 전해집니다. 천천히 손가락을 펼치자 녀석이 고맙다는 듯 머리위 허공을 한바퀴 돌고 산정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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