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겨울 산책

대빈창 2021. 1. 18. 07:00

 

5일 만에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요즘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의 일출시간은 7시 50분, 일몰 시간은 5시 40분입니다. 절기상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집니다. 해가 짧아지는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산책을 실내운동으로 대신합니다. 주말이 돌아오면 해가 봉구지산을 넘는 늦은 시간에 산책을 나서게 됩니다.  기온이 다시 영하로 떨어졌습니다. 두건과 장갑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봉구산자락을 따라가는 산책길에 올라섰습니다. 옛길은 산자락을 일군 밭과 다랑구지 논의 경계를 지으며 해변으로 향합니다.

밭가를 두른 폐그물 울타리에 갇힌 고라니가 나를 보고 당황스런 뜀박질로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전세계적 희귀종으로 전체 고라니의 90% 이상인 10만개체가 한반도에 살아갑니다. 산책을 나설 때마다 눈에 뜨이는 고라니가 족히 십여 마리는 됩니다. 논바닥에 떼로 앉은 기러기가 무거운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급히 멀어져갑니다. 먹이가 부족해 기운이 없는 녀석들은 날개를 펼치기보다 타조처럼 걷습니다. 기후변화에서 섬도 예외일수 없습니다. 밭작물은 고구마에서 점차 땅콩으로 옮겨갔습니다. 예년의 상품성 없는 고구마 찌끄레기는 밭가에 버려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닥친 태풍으로 벼가 쓰러져 농부들은 일찌감치 들불을 놓아 벼그루터기를 태웠습니다. 콤바인으로 수확하며 떨어진 알곡이 짚불과 함께 태워졌습니다.  이래저래 섬을 찾은 기러기들의 먹이감이 부족합니다.

지난 사나흘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며 마파람이 불었습니다. 선창 느리마을 갯벌의 사리 물때에  쌓인 얼음장과 죽세기(갯벌에 쌓인 성에, 섬의 방언)가 녹으며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대빈창 해변은 얼음장이 떠내려가며 모래사장에 부서진 스티로폼이 널려 있었습니다. 올 겨울의 매서운 동장군은 한강을 얼렸습니다. 강화도는 서울의 길목으로 예부터 인후지지咽喉之地(목구멍과 같은 땅)로 불렸습니다. 날이 푸근해지면 한강의 얼음이 떠 내려와 강화도 앞바다는 유빙으로 뱃길이 막힐 것입니다.

아름드리 떡갈나무는 재작년 제13호 태풍 링링(LINGLING)의 강한 바람을 못 이겨냈습니다. 산모퉁이로 돌아서는 길가에 강화나들길 12번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습니다. 산책로 아래는 급경사로 다랑구지 논이 이어졌습니다. 주문도 바라지너머 멀리 아차도와 볼음도가 차가운 대기에 웅크렸습니다. 바쁠것 없이 천천히 걷는 산책 걸음은  한 시간만에 마을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위 이미지는 봉구산 자락이 마지막으로 흘러내린 지점으로 옛길이 산자락 모퉁이를 돌아서고 있습니다.  오래 전 길을 닦으신 어르신들의 여유가 오늘 길을 걷는 나의 풍족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소나무가 떡갈나무 등쌀에 가지를 길가로 뻗어 일주문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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