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하일리의 강화학파의 태두 하곡霞谷 정제두(鄭濟斗, 1649 - 1736)의 묘를 답사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주차장을 향해 길을 건너는데 기울어가는 겨울 햇살을 무엇인가 힘없이 되쏘았다. 하우고개 정상 못 미쳐 서있던 작은 입간판이었다. 단출했다. 문화재를 알리는 갈색 바탕과 성곽 문양 그리고 한글과 한자 네 자 뿐이었다. 〈김취려金就礪 묘墓〉. 나는 이름에서 거란과 몽고의 침략이 빈번했던 고려 말의 한 장수를 떠올렸다. 비가 잦았던 지난 여름이었다. 산길은 이리저리 패인 물길과 날카롭게 모서리를 내민 산돌로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두꺼운 이불처럼 산길에 쌓인 낙엽을 뚫고 어느 만큼 산속으로 들어서자 녹색바탕의 작은 이정표가 나타났다. 〈김취려 묘(문화재자료 제25호) ← 150m〉.
잎을 떨 군 넓은잎나무의 빼곡한 숲 속에 홀연 탁 트인 묘역이 나타났다. 고려 장수 김취려 묘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 속에 홀로 외로웠다. 강화도의 5대 산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향해 돌아앉은 진강산(鎭江山, 443m) 산정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종친회에서 세운 아직 세월의 이끼가 앉지 않은 숭모비가 생경한 빛을 발했다. 석물은 새로 다듬은 망주석 한 쌍과 상석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였다. 묘소를 정비하면서 소나무는 손을 대지 않았다. 찾아가는 묘소마다 늘푸른 소나무가 눈 맛을 시원하게 했다.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계절의 숲에 주변을 경계 지은 소나무마저 없었다면 묘역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13세기 초, 동북아의 정세는 금(여진), 거란, 몽고가 절체절명의 칼을 겨누고 있었다. 한족의 송은 이름뿐인 나라였다. 1206년 칭기즈칸이 몽고를 통일했다. 금은 국력이 시들어갔다. 요 멸망 후 지리멸렬했던 거란은 대요수국을 세웠다. 몽고의 압력에 밀리면서 거란은 고려를 침입했다. 고려 - 거란의 3차 전쟁이 벌어졌다. 993년(성종 12년), 거란의 1차 침략에서 서희徐熙는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여 압록강 동쪽의 영토 강동 6주를 되돌려 받았다. 1010년(현종 1년), 거란의 2차 침략에서 강감찬姜邯贊은 우리역사 3대 대첩의 하나인 귀주대첩을 이끌어 거란 30만 대군을 물리쳤다.
위열공威裂公 김취려(金就礪, 1171 - 1234)는 1216년(고종 3년), 1만3천의 군사로 15만의 거란에 대승을 거두었다. 1217년(고종 4년), 개경의 턱밑까지 몰려 온 거란을 물리쳤다. 제천 박달재에서 거란 10만 대군을 좇아내 다시는 이 땅을 넘볼 수 없게 만든 명장이었다. 김취려는 1232년(고종 19년) 고려 최고의 관직 문하시중의 자리에 올랐다. 1234년(고종 21년) 강화도에서 사망했다. 그는 용맹과 함께 지략을 겸비했다. 세계 최강의 기마병 몽고에 군사력으로 부딪히기보다 외교 전략으로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했다.
김취려의 유적은 세 군데로 충북 박달재 정상에 '고려명장 김취려장군 대첩비'와 김취려장군 역사관이 있다. 두 곳에 위열공의 묘가 있었다. 과문한 나는 연유를 모르겠다. 탄생지 경남 울주 화장산 기슭과 강화도 진강산 서록 하우고개 산기슭이었다. 강화도의 묘소는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출토된 묘지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는데 ‘진강현鎭江縣 대곡동大谷洞 서쪽 기슭에 예장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위열공이 죽자 이곳에 예장하였다가 나중에 고향 산천으로 이장한 것인지 모르겠다.
고려 말 대학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 - 1367)은 「김공행군기金公行軍記, 1325년」에서 위열공 김취려를 이렇게 평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국가의 덕이 쇠하지 않았는데 전란이 있으면 반드시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신하가 나타나 국왕의 쓰임을 받아 시대의 어려움을 구하게 된다. (……) 공은 멀리 있는 몽골 군사와 교류하고 가까이 있는 적 거란을 공격했다. 몽골과 맹약을 맺어 나라의 근본을 순식간에 안정시켰다. 우리 사직의 신령이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신하를 뒤에서 도운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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