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백운거사白雲居士를 찾아 뵙다.

대빈창 2020. 12. 7. 07:00

 

 

나는 지금 출판사 《돌베개》에서 1996년에 출간한 『답사여행의 길잡이 7 경기남부와 남한강』의 291쪽에 실린 도판 〈이규보 묘소 전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새삼스럽다. 기억은 믿을만한 것이 못 되었다. 나의 발걸음은 25여 년 전 지역신문에 『강화도 답사기』를 연재하며 이곳을 찾았었다. 달포 전 위 이미지를 잡으며 조상의 묘역을 새롭게 단장한 문중의 정성이 갸륵하다고 생각했다. 25년 전, 기억은 봉분 앞 상석과 석등 그리고 망주석(望柱石) 한 쌍뿐으로 묘역은 조촐하다 못해 쓸쓸했다. 그런데 책의 도판에 낮은 돌담장에 둘러싸인 유영각(遺影閣)과 사가재(四可齋)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 - 1241)의 묘는 강화 읍내에서 전등사 방면으로 301번 지방도로를 타다, 길상 길직리 고개받이 주유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800m쯤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면 다랑이 논을 앞에 둔 낮은 산자락에 기대었다. 묘소 앞 공터에 두세대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가을 수확을 마친 곧게 줄 세운 벼 그루터기가 보기 좋았다. 묘역을 2단 석축이 경계 지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청풍계〉가 연상되는 나이 든 소나무는 지제부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울창한 가지로 하늘을 넓게 베어 먹었다. 유영각 뒤 멋지게 가지를 뒤튼 소나무도 그대로였다. 한옥 화장실 뒤편, 단청 없이 해맑은 전각 백운정사(白雲靖舍)가 낯설었다. 25년 전, 전각이 있었는지 나의 기억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빼 기와 얹은 돌담너머를 넘겨다보는데 흰둥이가 그악스럽게 짖어댔다.

이규보는 고려 무신정권의 혼란기에 태어났다. 집현전 대학사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고려 말 대학자였다. 어느 위인처럼 이규보도 그럴듯한 탄생 설화가 전해왔다. 이규보가 태어났을 때 온몸의 부스럼으로 사람구실을 기대할 수 없어 온 가족은 실망했다. 어느 날, 걸승이 유모에 업힌 아이를 보며 한마디 했다. “장차 큰 인물이 될 아이를 왜 이렇게 내버려두는 고.” 24세에 부친을 잃은 이규보는 천마산에 칩거하며 백운거사(白雲居士)라 스스로 칭했다. 그가 남긴 문집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등 쉰다섯편이나 되었다. 그의 대표작은 누구나 알고 있듯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일대 서사시로 읊은 『동명왕편東明王篇』이었다. 고구려인의 기상을 새롭게 불러. 후손들의 잠든 영혼을 일깨웠다. 이규보의 문학은 자유분방하고 웅장했다. 그는 분명 두주불사(斗酒不辭)였을 것이다. 산천이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드는 봄이 오면 나는 강화도 인삼막걸리를 들고 이규보 묘소를 다시 찾을 것이다. 마지막은 백운거사(白雲居士)의 낭만적 풍모가 드러난 취가행(醉歌行)이다.

 

天若使我不飮酒    하늘이 내게 술을 못 마시게 할 양이면

不如不放花與柳    아예 꽃과 버들 피어나게 하질 말아야지

花柳芳時能不飮    꽃버들이 아리따운 이때 어이 안 마시리

春寧負我我不負    봄은 나를 저버릴망정 나는 그리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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