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소띠 해였다. 강화도의 일출시간은 7시 50분이다. 평소처럼 6시 30분에 일어났다. 세밑 한파가 매서웠다. 이틀이나 수은주는 영하 10도 이하를 가리켰다. 뒤울안 야외 수도가 동파되었다. 임시방편으로 고무 밴드로 묶었다. 날이 풀려서야 수도공사 일판을 벌일 수 있겠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리고 아침을 먹고 봉구산에 올랐다. 아침저녁 산책을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면서 나의 발걸음은 산행을 멀리했다. 인적 없는 산길은 떡갈나무 낙엽이 뒤덮었다.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가 며칠 전 볼음도에서 주문도로 건너왔다. 살꾸지 선착장 모래 해변에 멧돼지 가족의 발자국이 뚜렷했다. 밤의 잔영이 가시지 않은 어슴푸레한 쓰러진 고목 뒤에서 씩씩거리는 어미돼지의 숨찬 소리가 들려 올 것 같았다. 괜한 두려움에 발걸음이 머뭇거렸다.
새해 첫날 주문도발 아침 객선의 뱃고동이 울렸다. 산정이 가까워지자 턱이 닿을 듯 경사가 가파르다. 고갯길을 솔가리가 한 겹 이불을 씌웠다. 산정은 소나무 숲이 에둘렀다. 백동전같은 보름달이 소나무 우듬지에 얹혀졌다. 봉구산 산정의 거대한 철탑이 거만한 눈길로 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문도 공용기지국이었다. 선조의 통신연락 수단이었던 봉수대가 설치되었던 자리였다. 아차도를 들러 볼음도로 향하는 삼보12호의 엔진음이 여명이 터오는 섬의 고요에 파문을 일으켰다. 바닷물은 만조에 가까웠다. 주문도가 서해를 향해 혀를 내민 것 같은 살꾸지와 무인도 수시도·돌섬의 가슴까지 바닷물이 부풀었다.
하늘의 검은 구름떼가 동녘으로 느리게 흘러갔다. 잿빛 기운이 두텁게 바다와 하늘을 갈라놓았다. 시간이 흐르자 해의 기운이 혼탁한 잿빛 덩어리 위로 번져나갔다. 옹진 장봉도 상공의 검은 뭉게구름 아랫부분이 파스텔처럼 붉게 번져갔다. 새해 첫날 일출은 볼 수 없었다. 하늘은 점차 먹구름에 점령당했다. 은화 같은 둥근달이 산을 내려오는 내내 나를 따라왔다. 새해의 달력은 이철수 판화달력을 걸었다. 달력의 달수를 가리키는 숫자 위에 〈禁酒 〉를 일일이 붙였다. 금주를 한지 20개월이 지났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돼지띠해의 5. 1 노동절부터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을 온전히 이겨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 첫날을 맞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충심忠心을 가슴 속에 단단히 박았다. 남은 인생에 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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