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0

섬칫하다. - 2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해 놀라 움츠러드는 느낌을 ‘섬칫하다’라고 합니다. 첫 번째 섬칫한 만남은 이년 전 한로寒露를 막 지나 우리집 뒤울안 수돗가의 살모사殺母蛇 였습니다. 놈은 바닥에 삼각형 머리를 곧추세워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섬칫한 만남은 달포 전에 있었습니다. 절기는 여름이 성큼 다가선다는 입하立夏를 지나,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한 시경 나의 점심산책은 대빈창 들녘에서 봉구산 자락 옛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발밑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며 스-르-르-륵 하는 무언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유혈목이였습니다. 녀석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에 놀라 고라니 방책용으로 밭가에 둘러친 폐그물 구멍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습니다. ..

다랑구지의 망종芒種

때는 24절기 가운데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드는 아홉 번째 절기 망종芒種입니다. 망종은 수염 있는 까끄라기 곡식 종자를 뿌리는 적당한 시기입니다. 전통 농사법에서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은 때였습니다. 요즘은 영농기계화로 모의 성장기간이 10일 정도 앞당겨졌습니다.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도 한 절기 앞선 소만小滿 무렵에 모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임인년壬寅年 봄가뭄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지독합니다. 년중 강수량은 예년의 1/4도 못 미치는 92mm 였습니다. 대빈창 들녘은 지하수가 풍부해 그럭저럭 버텨나가지만, 문제는 밭작물입니다. 고추와 고구마는 묘를 이식했지만 비맛을 보지 못해 시들다 말라 죽었습니다. 그나마 일손 있는 농가는 연일 우물물을 퍼다 타는 목마름을 식혀 줄 뿐입니다. 농부들은 비 한 ..

뒷집 새끼 고양이 - 32

노순이가 여덟 배 째 새끼를 낳은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132주년 세계 노동절을 맞은 그날, 노순이는 몸을 풀었습니다. 녀석은 그동안 사람 눈이 안 뜨이는 곳을 골라 몰래 새끼를 낳았습니다. 노순이의 몸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느 때보다 배가 불러 뒷집 형수는 걱정했습니다. 녀석의 배는 땅에 끌릴 정도로 크게 부풀었습니다. 형수는 노순이의 해산일을 정확히 맞추었습니다. 광에 골판지 박스로 분만실을 마련하고 미닫이를 닫았습니다. 경험 많은 노순이는 무탈하게 새끼 다섯 마리를 순산했습니다. 여섯 배 째는 얼룩이를, 일곱 배 째는 노랑이를 한 마리씩 낳던 노순이가 네다섯 배처럼 다섯 마리를 낳았습니다. 어미를 닮은 노란빛이 세 마리, 아비를 닮았을 희끗희끗한 놈이 두 마리였습니다. 열흘이 지났을까, 아침 ..

소만小滿의 대빈창 들녘

이미지는 소만小滿의 대빈창 다랑구지입니다. 소만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로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듭니다. 햇빛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입니다. 봄 가뭄이 길어져 애를 태웠지만 풍부한 지하수를 퍼내 논배미마다 물을 얹었습니다. 앞으로 사나흘이면 대빈창 들녘의 모내기도 마치겠지요.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리면 섬마을의 허공은 개구리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말그대로 악머구리 끓듯 합니다. 올해 봄 날씨는 일교차가 크지 않아 모가 충실해서 모내기가 별 탈 없습니다. 예년보다 모내기가 5일 정도 앞서나갔습니다. 조각보처럼 기운 다랑구지가 점차 푸르게 변해가며 농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기계화된 벼농사는 모내기를 끝내고 천재지변을 피하면 벼베기까지 크게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 3

까마귀는 참새목 까마귀과 까마귀속의 새다.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서식하는 흔한 텃새이다. 까마귀의 학명 Corvus corone는 썩은 고기를 먹는 것과 관계가 있다. 까마귀의 몸은 암수 모두 자줏빛 광택이 나는 검정 색이다. 까마귀는 농촌의 인가 부근, 해변, 산 등 높은 나무 위에 나뭇가지로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짓는다. 알을 낳은 시기는 3월 하순에서 6월 하순까지이다. 알을 품는 기간은 19-20일이고, 새끼는 알을 깬지 30-35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둥지를 떠난 어린 새는 오랫동안 어미 새와 함께 지냈다. 까마귀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새였다. 반포지효反哺之孝, 즉 효도하는 새로 까마귀의 새끼가 자라서 어미 새에게 공양한다고 알려졌다. 이는 둥지를 떠날 때 몸집이 꽤 큰 어린 까마귀가 어미에게..

삼보 예비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지 2년6개월이 지났다. 가공할 바이러스의 침공에 인류는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추가접종을 맞았지만 변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감염되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현대 산업문명이 저지른 자승자박이라 하지만 사람은 먹고 살아야 했다. 다행히 나의 삶터는 서해의 작은 외딴섬이었다. 코로나 정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대였다. 봄이 무르익으며 외지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초기방역에서 선전했던 K-방역도 무너졌다. 정부당국은 코로나-19를 감염병 2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 땅 사람들 1/3이 확진자 대열에 들어섰다. 위 이미지는 삼보5호 예비선이 살꾸지항에 접안했다. 화도 선수항과 주문도를 오가는 도선은 2개 항로였다...

주문도의 화신花信

바야흐로 절기는 일 년 중 날이 가장 맑다는 청명淸明을 지나 본격적인 영농이 시작되는 곡우穀雨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 봄꽃이 한창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봉구산 자락을 휘감는 옛길을 따라 산책에 나섰습니다. 이른 아침 맑은 대기에 청매靑梅 향이 아찔했습니다. 농부들은 밭 모서리마다 유실수를 가꾸었습니다. 해마다 면에서 얻은 한두 그루 과실수를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매실・사과・배・감・살구나무입니다. 3-4년 자라 나무줄기가 손가락만하게 굵어지면 농부들은 줄에 벽돌을 매달아 수형을 잡았습니다. 위로 뻗으려는 가지는 무게를 못 이기고 옆으로 넓게 퍼졌습니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매화꽃을 탐하고 있었습니다. 겨우내 몸이 굼실거렸던 농부들이 따뜻한 봄볕아래 밭두둑을 골랐습니다. 고..

뒷집 새끼 고양이 - 31

위 이미지는 노랑이가 뒷집 마늘밭 고랑에 앉아 숨을 골랐다. 노순이 모녀는 요즘 그들만의 아지트였던 광에서 밖으로 쫓겨났다. 그동안 날이 추워 방에 들였던 병아리들을 광에 설치한 유아원(?)으로 옮겼다. 길이가 2m, 폭은 1m, 높이가 1m 크기였다. 아직 새벽 기온은 낮았다. 투명비닐을 덮었고, 백열등을 켜 놓았다. 50여 마리의 병아리들은 인기척이 나면 옹송그리며 서로 몸을 부볐다. 고양이 모녀는 마당 모서리 텃밭의 경사면에 이어붙인 농기계창고에서 지냈다. 노순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집에 발걸음을 했다. 노랑이는 무엇을 하는 지 통 볼 수가 없었다. 날이 많이 풀려 한데서 자도 녀석들은 별 탈 없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뒷집 형네 부부가 집으로 들어서는 언덕 길가에서 일을 하고 ..

대빈창 해넘이

세월이 유수와 같습니다. 임인년 범띠 해도 어느새 1/4이 흘러갔습니다. 바다가 크게 부풀었습니다. 물때는 7물(사리)입니다. 무인도 분지도 옆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해무리가 졌습니다. 어른들 말로 내일 비가 올 징조입니다. 서해의 작은 외딴섬 주문도에 삶터를 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실 온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집” 그렇습니다. 우리집이 자리 잡은 느리 마을은 북향입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슬라브 옥상에서 바라보는 대빈창 해변으로 떨어지는 낙조는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시뻘건 불덩어리가 그대로 바다에 첨벙! 빠져 들어갔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일몰이 가슴을 적신다고 합니다. 인간이 유한적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일까요. 2005. 7..

뒷집 새끼 고양이 - 30

모녀가 우리집에 동행했다. 노순이는 새끼 노랑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녀석은 어머니가 삶은 돼지고기 한 점을 던져주자, 끈질기게 나타나 아양을 떨었다. 어머니가 보행보조기를 끌고 언덕 위 장대한 소나무에 다다르면 노순이는 어느새 쫒아와 땅바닥을 뒹굴었다. 흙투성이 몸을 어머니 발잔등에 비벼댔다. 끈질긴 녀석의 아양에 어머니가 두 손 들었다. 김치찌개에 숨은 돼지고기 한 점을 던져주었다.들어오지마! 큰소리치면 노순이는 현관문 앞에서 얌전히 기다렸었다. 이제 녀석은 막무가내로 현관에 들어와 마루문 앞 댓돌에 깔아놓은 수건에 웅크리고 앉았다. 새끼 노랑이는 부엌 쪽문 앞에서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앙알거렸다. 뒷집 모녀 고양이가 식탐에 걸걸 대었다. 어머니가 만두 속을 발라내어 던져 주었다. 위 이미지는 먹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