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주문도의 화신花信

대빈창 2022. 4. 18. 07:00

 

바야흐로 절기는 일 년 중 날이 가장 맑다는 청명淸明을 지나 본격적인 영농이 시작되는 곡우穀雨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 봄꽃이 한창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봉구산 자락을 휘감는 옛길을 따라 산책에 나섰습니다. 이른 아침 맑은 대기에 청매靑梅 향이 아찔했습니다. 농부들은 밭 모서리마다 유실수를 가꾸었습니다. 해마다 면에서 얻은 한두 그루 과실수를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매실・사과・배・감・살구나무입니다.

3-4년 자라 나무줄기가 손가락만하게 굵어지면 농부들은 줄에 벽돌을 매달아 수형을 잡았습니다. 위로 뻗으려는 가지는 무게를 못 이기고 옆으로 넓게 퍼졌습니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매화꽃을 탐하고 있었습니다. 겨우내 몸이 굼실거렸던 농부들이 따뜻한 봄볕아래 밭두둑을 골랐습니다. 고구마 두둑 비닐 멀칭을 씌웠습니다. 고라니 침입을 방지하는 폐그물로 밭 울타리를 손보았습니다. 마른 논에 지하수를 퍼 올렸습니다. 못자리 터를 반듯하게 다졌습니다.

주문도의 화신花信은 강화도보다 대략 5일 가량 늦습니다. 남한에서  봄꽃이 가늦게 피는 지역일지 모르겠습니다. 산책로 주변 밭모퉁이마다 개복숭아꽃이 한창입니다. 묵정 밭 경사면에 쇠뜨기가 무성하게 촉을 내밀었습니다. 먼 산에 진달래가 화사하고 밭 경계 울타리의 개나리가 수천 개의 노란등을 밝혔습니다. 찔레와 산초나무가 어린잎을 틔었습니다. 생강나무 꽃은 어느새 끝물입니다. 밭두둑의 개두릅이 한창입니다. 멀리 새순을 터뜨리는 산 능선이 파스텔톤으로 물들어갔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와 우리집 뒤울안 화계花階로 돌아섭니다. 수돗가의 명자나무 꽃망울이 엄지손톱만해졌습니다. 감나무는 게으르게 이제 하나둘 잎몽오리를 부풀렸습니다. 우리집은 그늘진 북향이라 마을에서 꽃소식이 가장 늦습니다. 그래도 어김없이 자기 몫의 생生을 구가하는 녀석들이 대견합니다. 방풍나물은 예의 생명력으로 화계의 주인 노릇에 열심입니다.

수선화가 하나같이 꽃대마다 금잔옥대金盞玉臺을 매달았습니다. 할미꽃이 대견스럽게 올해도 무성하게 꽃망울을 흙속에서 밀어 올렸습니다. 작약이 붉은 촉을 이제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수국은 마른줄기에 하나둘 잎을 피어 올렸습니다. 상사화는 자리가 비좁다는듯 무성합니다. 박태기나무는 줄기 피부에 자잘한 보라색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작년에 심은 어린 라일락이 포기를 열심히 늘리더니 꽃망울을 한움큼 머리 위에 달았습니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입니다. 봄이 무르익었습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 3  (0) 2022.05.13
삼보 예비선  (0) 2022.05.02
뒷집 새끼 고양이 - 31  (0) 2022.04.08
대빈창 해넘이  (0) 2022.04.01
뒷집 새끼 고양이 - 30  (0) 2022.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