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대빈창 해넘이

대빈창 2022. 4. 1. 07:00

 

세월이 유수와 같습니다. 임인년 범띠 해도 어느새 1/4이 흘러갔습니다. 바다가 크게 부풀었습니다. 물때는 7물(사리)입니다. 무인도 분지도 옆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해무리가 졌습니다. 어른들 말로 내일 비가 올 징조입니다. 서해의 작은 외딴섬 주문도에 삶터를 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실 온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집”

 

그렇습니다. 우리집이 자리 잡은 느리 마을은 북향입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슬라브 옥상에서 바라보는 대빈창 해변으로 떨어지는 낙조는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시뻘건 불덩어리가 그대로 바다에 첨벙! 빠져 들어갔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일몰이 가슴을 적신다고 합니다. 인간이 유한적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일까요.

2005. 7. 25. 낯설고 물선 주문도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아버지는 중증 치매로 인생의 마지막을 요양원에서 보내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옛집에서 홀로 텃밭을 가꾸며 소일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어머니는 막내아들에게 짐이 될 수 없다며 혼자 남겠다고 하십니다. 2008. 11. 2. 저는 홀어머니를 섬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한적한 섬에서 가난하게 살다, 죽어 이 섬에 뼈를 묻겠다고.

나의 인생을 결정지은 그때의 결단은 쉼플레가데스를 정면돌파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우리집은 지은 지 40여 년이 다 된 단독주택입니다. 대지 150평은 집과 텃밭과 작은 마당이 나누었습니다. 논 세 마지기를 억지로 떠맡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농사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식량을 자급자족한다는 안도감에 행복해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올해 구순九旬을 맞으셨습니다. 섬에 오셔서 어머니는 척추협착증과 고관절이라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잘 이겨내셨습니다.

아버지는 텃밭 모퉁이 모과나무에 수목장으로 모셨습니다. 오년 전 세상을 뜬 누이동생은 아버지 곁의 매실나무에 잠들었습니다. 살아생전 술을 못했지만 아버지와 누이께 막걸리를 올렸습니다. 어머니 나무는 아버지와 누이가 잠든 공간 사이에 새로 심었습니다. 나는 남은 生을 20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내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년 안팎일 것입니다. 천천히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해야겠습니다. 나의 무덤으로 소나무 한 그루 심어야겠습니다.  존엄함 삶의 마무리를 위한 준비와 다른이에게 빛을 주는 사후 각막 기증을 등록했습니다. 많지 않은 모든 재산은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도록 남기겠습니다. 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넘이를 자주 보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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