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블로그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리뷰는 「뒷집 새끼 고양이」였다. 새끼 고양이 재순이와 노순이를 처음 만난 것이 8년 전 초여름이었다. 그때 녀석들을 뒷집 뒤울안 배나무 가지에 올려놓고 이미지를 잡았다. 지금 배나무는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았다. 노순이와 재순이는 느리선창 매표소에서 분양받은 남매였다. 남매 고양이보다 일 년 빠른 덩치가 작았던 검돌이는 이년 전 가출해서 소식을 알 수 없다.
노순이는 새끼를 잘 낳았다. 네다섯마리씩 새끼를 낳던 녀석은 여섯 배 째부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한 마리만 남았다. 사나웠던 얼룩이는 강화도 방앗간에 분양되었다. 요즘 어미를 따라 우리집에 놀러오는 노랑이는 일곱 배 째였다. 감나무집 나비는 대빈창 길냥이 사 형제 중 막내였다. 섬은 길냥이가 눈에 띄게 많았다. 재순이와 목숨 걸고 영역 다툼을 벌이는 검은놈은 길냥이 세계의 왕초였다. 재순이는 두 번씩이나 볼따구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부상을 당했다. 놈들은 만나기만하면 피터지게 싸웠다. 느리가 또 짖어댔다. 밖을 내다보면 길냥이가 여유롭게 언덕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볼음도 매표소 고양이 보름이다. 녀석의 원래 이름은 흔한 나비였다.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알아챘을 것이다. 녀석의 이름은 섬 이름 볼음도에서 따왔다. 보름이는 고양이 세계의 기품있는 귀족처럼 생겼다. 녀석이 볼음도 매표소 식구가 된 것이 이년 전이었다. 어느날 점잖은 녀석이 나의 눈에 띄었다. 한 달에 서너번 볼음도에 건너가지만 길거리에서 못보던 녀석이었다. 매표소 주인 말에 따르면 문득 녀석이 선창에 나타났다.
분명 서해 작은 섬에 피서왔던 도회인이 버린 애완 고양이였다. 갈 데가 없었던 녀석은 주인을 찾아 선창을 서성거리다 매표소 식구가 되었다. 매표소를 운영하는 부부가 녀석을 잘 보살폈다. 매표소 건물 뒤 옹벽 아래 집을 마련해 주었다. 오랜 만에 만난 녀석은 두 눈에 눈곱이 꼈다. 고상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몰골이었다. 나는 매표소에서 짜 먹이는 고양이 간식을 얻어 녀석을 유혹했다. 보름이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며칠 뒤 선창에서 만난 녀석이 쭈뼛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간식을 얻어 먹은 인연으로 녀석은 나를 피하지 않았다. 보름이는 살이 많이 쪄 있었다. 녀석의 모습을 담으려 손에 들고있던 홀더를 매표소 출입구 턱에 내려 놓았다. 놈은 먹을 것을 주는 줄 알고 얼른 다가왔다. 녀석은 볼수록 기품이 넘쳤다. 보름이는 어릴적 도시에 살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서해의 작은 외딴 섬에서 낯모르는 이들의 손에 든 무엇을 탐내는 신세가 되었다. 아무튼 녀석이 무탈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이미지는 지난 초가을 볼음도 선창 매표소앞 저어새마을 안내판 그늘에 앉아있는 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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