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는 앞서 포스팅한 「푸른 여명」의 무인도 분지도가 마주보이는 대빈창 바위벼랑아래 제방이다. 예각으로 사석을 올려쌓은 제방아래 커다란 돌들을 길게 바닥에 잇대어 늘어놓았다. 만조시 하루에 두 번 제방을 때리는 바닷물의 힘을 분산시키는 방책이었다. 돌덩어리들은 제방을 때리는 파도에 휘둘려 시간이 갈수록 흐트러졌다.
오래전 태풍이 서해를 타고 올라왔을 때 나는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을 목격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새벽 산책을 나갔었다. 거센 폭풍을 등에 업은 집채만한 파도가 들이닥치자 제방은 힘없이 무너졌다. 그 시절 제방은 콘크리트 옹벽이었다. 덩치 큰 돌덩어리로 다시 제방을 쌓았다.
할멈 둘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 // 살얼음 갯바위 틈새 / 얼어죽은 한 마리 주꾸미 주우려 // 갯바위를 걸어서 / 굴바구니 들고 갯티에 가는 // 생계 줍는 아침
「생계 줍는 아침」의 전문이다. 글머리의 詩를 고르다, 서해의 섬들을 시의 영토에 편입시켰다는 시인 이세기의 두 번째 시집『언 손』(창비, 2010)을 펴들었다. 시가 낯익었다. 그렇다. 6년 전 포스팅한 글 「구라탕 터놓는 날」에서도 인용한 시였다. 구라탕은 굴+바탕의 어원을 가진 지명이었다. 주문도의 갯티는 구라탕이었다. 자연부락 느리·대빈창·꽃동네의 공동 굴밭이다. 구라탕은 어린애 머리통만한 돌들이 갯벌을 뒤덮었다.
구라탕은 찬바람이 불어오면 터놓았다. 굴의 작황을 보아 닫는 시기를 정해 다음 겨울을 기약했다. 이맘때쯤, 섬 할머니들의 쌈지가 말라갈 때였다. 할멈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분지도의 굴을 쪼았다. 그들의 생계벌이였다. 계절은 새벽 온도가 떨어지고 아침해가 봉구산 넘기를 힘겨워하고 있었다. 바닷물에 살얼음이 일었다. 어머니가 조리로 쌀을 이르듯이 사 - 각, 사 - - 각 소리를 내며 바닷물 표면이 얼면서 돌덩이에 쌓여갔다. 섬사람들을 이를 죽쎄기라 불렀다. 물의 주름이 허옇게 일어난 성에에 뚜렷이 새겨졌다.
나의 어릴 적 동네 방앗간에서 정미한 쌀은 깨끗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밥을 앉히기 전 조리로 쌀을 일러 돌과 잡티를 골라냈다. 대보름날 행사의 하나로 복이 들어오라고 걸어두었던 복조리였다. 올겨울은 날이 푸근해서 한강에서 강화 바다로 유빙이 떠내려 오지 않았다. 유빙은 죽쎄기를 만나 키를 늘리고, 덩치를 키워 바다를 덮었다. 그리고 섬을 고립시켰다. 서해가 커다란 조리질을 하고 있었다. 염농도가 낮은 바닷물 표면을 조리질해서 제방아래 쌓아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