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4절기 가운데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드는 아홉 번째 절기 망종芒種입니다. 망종은 수염 있는 까끄라기 곡식 종자를 뿌리는 적당한 시기입니다. 전통 농사법에서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은 때였습니다. 요즘은 영농기계화로 모의 성장기간이 10일 정도 앞당겨졌습니다.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도 한 절기 앞선 소만小滿 무렵에 모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임인년壬寅年 봄가뭄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지독합니다. 년중 강수량은 예년의 1/4도 못 미치는 92mm 였습니다. 대빈창 들녘은 지하수가 풍부해 그럭저럭 버텨나가지만, 문제는 밭작물입니다. 고추와 고구마는 묘를 이식했지만 비맛을 보지 못해 시들다 말라 죽었습니다. 그나마 일손 있는 농가는 연일 우물물을 퍼다 타는 목마름을 식혀 줄 뿐입니다. 농부들은 비 한 번 오는 것이 비료 한 번 주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다랑구지의 조각보 같은 논배미마다 연록의 융단이 깔렸습니다. 모들이 뿌리를 뻗고 자리를 잡으면서 거름기를 타 벼잎이 짙어졌습니다. 논두렁에 노란 꽃이 만발했습니다. 황금빛 꽃잎의 금계국(Golden-Wave, 金鷄菊)은 국화과 식물로 북아메리카 원산의 원예식물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입니다. 줄기 높이는 30-60cm이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집니다. 관상용으로 번식력이 강해 어느 땅에서나 잘 자랍니다.
일본의 농農사상가 우네 유타카(宇根豊, 1950- )는 『농본주의를 말한다』(녹색평론사, 2021)에서 ‘농민의 미의식’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홋가이도를 제외한 일본 전국 각지의 논두렁에는 꽃무릇이 심겨 있습니다. 꽃무릇은 씨가 없기 때문에 덩이줄기(구근)을 나누어서 심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농민이 모두 심은 것인데, 왜 그렇게 한 것일까요? 이것은 쓸데없는 일일까요? 저는 ‘고와서’ 심었다고 확신합니다. ······.
옛날부터 농민들은 산과 들의 꽃을 따서 장식했습니다. 자기집 마당에 심기도 했습니다. 들에 핀 꽃이라도 예쁜 것은 꺾어올 뿐 아니라 논두렁에 심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 논 입구에는 옛사람들이 심은 원추리가 심겨 있어서 모내기철이 되면 주황색의 예쁜 꽃이 핍니다. 저도 풀을 벨 때 이 꽃은 남겨서 지키고 있습니다. 농민이 꽃무릇을 논두렁에 심은 것은 농민들의 전통적인 정신입니다."
어느 해 식목일 무렵 면사무소에서 일회용 포트에 심긴 금계국 묘종을 부락별로 나눠주었겠지요. 농부들은 마땅한 터를 잡을 수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꽃묘를 논두렁에 이식했습니다. 한두 해가 지나고 망종 무렵이 되자 다랑구지의 논두렁마다 황금빛 꽃이 만발했습니다. 물기먹은 논두렁이 주저앉는 것을 얼키설키 엉킨 금계국 뿌리가 잡아주었겠지요. 논일을 하는 농부들의 눈길은 자신도 모르게 논두렁의 황금빛 꽃에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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