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해 놀라 움츠러드는 느낌을 ‘섬칫하다’라고 합니다. 첫 번째 섬칫한 만남은 이년 전 한로寒露를 막 지나 우리집 뒤울안 수돗가의 살모사殺母蛇 였습니다. 놈은 바닥에 삼각형 머리를 곧추세워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섬칫한 만남은 달포 전에 있었습니다. 절기는 여름이 성큼 다가선다는 입하立夏를 지나,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한 시경 나의 점심산책은 대빈창 들녘에서 봉구산 자락 옛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발밑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며 스-르-르-륵 하는 무언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유혈목이였습니다. 녀석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에 놀라 고라니 방책용으로 밭가에 둘러친 폐그물 구멍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습니다. 굵은 몸뚱어리가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고, 녀석은 서너 번 같은 행동을 되풀이했습니다. 당황한 녀석이 그물을 따라 좌우로 빠르게 미끄러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눈에 뜨이는 뱀입니다. 시골 어른들은 흔히 율모기라고 불렀습니다. 빠르게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에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꽃뱀, 화사라고 합니다. 몸은 녹색을 띠며 전신에 검은 띠무늬가 있고, 몸통 앞쪽에 꽃이 핀 것처럼 붉은 무늬가 있습니다. 어릴 때, 알록달록한 무늬가 예뻐서 새끼 뱀을 잡아 성냥갑에 넣고 다니며 동무들을 놀려 주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녀석은 살모사와 달리 부리나케 꽁무니를 뺐습니다. 유혈목이는 무독성無毒性으로 알고 있었으나, 위턱 안쪽 2개의 독니로 먹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신록이 무성한 여름철 개구리 울음이 유난히 구슬프게 들립니다. 막대기로 풀섶을 헤치면 영락없이 꽃뱀이 산 개구리를 반쯤 물었습니다. 뱀을 쫓아도 개구리는 도망가지 못하고 멀뚱히 앉았습니다. 다음날 가보면 개구리는 그 자리에 죽어 있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꽃뱀의 독으로 개구리는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7년 미국 생물학자는 유혈목이는 두꺼비를 잡아먹어 독을 얻는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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