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에서 가장 친근한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4호 강화江華 볼음도乶音島 은행나무다. 한 달에 네댓 번은 볼음도에 건너갔다. 선착장에서 시작되는 강화도나들길 13코스(서도 2코스)를 따라가면 섬의 가장 안쪽 마을 안말의 은행나무 공원에 닿았다. 볼음도 나들길은 본연의 길(道)의 의미를 걷는이에게 되묻는 길이었다. 故 신영복 선생은 길의 본뜻을 이렇게 풀어냈다.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고,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한다. “길(道)이란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볼음도 은행나무는 8백여 년 전(고려시대) 대홍수로 뿌리 째 떠내려 온 나무를 섬사람들이 건져 올려 산자락에 심었다고 한다. 오늘에 이르러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가 9m에 이르는 노거수老巨樹가 되었다. 2019년 서해를 관통한 태풍 링링의 피해로 가운데 줄기 윗부분이 부러졌다. 늘어진 가지 일부를 철사로 묶어 지탱하고, 벌어진 틈을 충전재로 메웠다. 위 이미지는 10월 하순에 잡았다. 부챗살처럼 퍼진 가지마다 온통 짙푸른 잎을 무성하게 매달고 있었다. 은행나무 공원 너머는 바로 서해였다. 8km 바다건너 북한땅이 지척이었다.
은행나무는 1982. 11. 9.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현재 23그루였다. 천연기념물은 대우받는 나무였다. 화재나 천재지변으로 소실되더라도 등록번호는 다른 문화재로 대체되지 않고 영구결번으로 처리되었다. 태풍으로 은행나무가 다쳤을 때 문화재청은 긴급구호반을 발빠르게 서해의 작은섬에 투입했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볼음도 은행나무가 지금처럼 우람하고 무성해진 것은 볼음도저수지 덕택이었다. 이미지의 오른편 길은 10만평 넓이의 저수지 제방으로 이어졌다. 소금기 묻은 해풍에 시달리던 은행나무가 저수지 담수를 가까이하면서 기력을 회복했다. 은행나무 뒤편의 산비탈에 모로 누운 나무는 소사나무였다.
3억년전부터 지구에서 살아 온 화석식물은 침엽수로 여러 갈래로 갈라졌던 잎이 현재 오리발(鴨脚樹)처럼 하나로 합쳐졌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문 - 은행나무강 - 은행나무목 - 은행나무과 - 은행나무속 - 은행나무종에 속하는 지구상 단 하나의 유일한 식물이었다. 은행나무 줄기에서 가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매달린 나무 돌기가 눈길을 끌었다. 종유석처럼 땅쪽으로 자라나는 유주乳柱였다. 공기 중의 숨 쉬는 기근氣根의 일종으로 은행나무의 3억년에 걸친 오랜 진화의 결과물이었다.
수나무로 은행을 달지 않는 볼음도 은행나무의 짝은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 호남중학교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었다. 수령 800년의 〈연안 은행나무〉는 수고 19m로 북한 천연기념물 제165호였다. 8백 년 전 어느 여름 큰 비가 퍼부었고 은행나무 부부는 생이별을 당했다. 〈연안 은행나무〉와 〈볼음도 은행나무〉는 ‘이산 은행나무 부부’였다. 문화재청과 섬연구소는 남북 분단으로 헤어져 사는 두 은행나무를 위로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칠석(음력 7. 7)에 '볼음도 은행나무 민속행사'가 볼음도 은행나무공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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