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마니산 참성단 소사나무

대빈창 2021. 11. 8. 07:30

 

천연기념물 제502호 강화江華 참성단塹星壇 소사나무는 ‘하늘아래 첫 천연기념물’인지 모르겠다. 우리민족의 시조 단군왕검이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올렸던 마니산 참성단에 자리 잡았다. 마니산은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정중앙에 지리잡은 민족의 영산靈山이었다. 마니산 정상은 해발 472.1m에 불과하지만 섬산이라 해발 0m 가까이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만만치 않은 높이였다. 강화도 최고봉으로 참성단에 오르려면 화강암 급경사를 힘들게 기어 오를수 밖에 없었다.

하늘은 물기를 잔뜩 머금었고, 구름은 낮게 떠있었다. 곧장 빗줄기를 퍼부을 것처럼 찌푸린 날씨였다. 이른 시각인지 산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입장료는 2,000원이었다. 얼마만의 마니산 산행인가. 매표소를 지나자 등산로 좌우로 낯선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천부인 광장〉, 〈개천 마당〉, 〈참성단 재현 조형물〉, 〈단군 놀이터〉. 인적 끊긴 산중의 바위를 타고 넘는 흰 포말의 계류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가는 더위를 잡으려는 쓰르라미의 발악적 울음소리가 적막한 산중을 할퀴었다.

등산로는 기도원 샛길을 기점으로 야자수 매트와 돌계단·흙길로 구분되었다. 정상으로 향할수록 경사가 급해졌고 나의 숨은 턱에 닿았다. 매표소를 지난 지 40분 만에 마니산 정상에 닿았다. 나의 발걸음은 사적 제136호 참성단에 올라설 수가 없었다. 참성단을 둘러싼 철책 울타리가 굳게 잠겨 있었다. 제단의 보수 공사로 등산객의 출입을 막았다. 공사인부들로 보이는 말소리가 참성단에서 들려왔다. 천연기념물 나무 이미지를 잡기위한 나의 이른 아침 등산은 수포로 돌아갔다. 낙심하며 마니산 등산코스의 정수사행 하산 능선으로 돌아섰다. 그때 불현듯 석축 위에 소사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참성단 소사나무는 2009. 9. 16.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나무는 제단 가장자리에 가까스로 뿌리를 내렸다. 키가 4. 8m이고, 뿌리 부근 둘레가 2.74m  였다. 동서방향 7m, 남북방향 6m로 나무의 품은 그리 넓지 않았다. 여러 개로 갈라진 줄기에 나무갓 모양이 단정하고 균형이 잡혔다. 참성단의 돌단 위에 홀로 서있어 더욱 돋보였다. 문화재청은 마니산 참성단의 소사나무를 우리나라의 유일한 소사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소사나무가 없었다면 휑뎅그렁한 마니산 참성단의 풍경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유명 나무 칼럼니스트는 말했다. “흙 한 줌이 고작인 참성단 돌 틈에서 1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장한 나무”라고.

전국에서 가장 기氣가 센 곳이라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정상에 홀로 서있는 소사나무가 영험스러웠다. 자료를 찾으면서 천연기념물 소사나무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경인일보〉의 연중기획 ‘실향민 이야기―꿈엔들 잊힐리야’ 2017년 취재 과정에서 사실이 드러났다. 홍승주 할아버지의 1947년 수학여행 기념사진의 참성단에 소사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소사나무는 1947년 이후 누군가에 의해 참성단에 옮겨 심어졌다. 나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구군부 세력을 의심했다. 역사적 비정통성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열등감은 국토 곳곳을 성역화했다. 단군이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참성단,  신성한 신단수神壇樹가 연상되는 나무가 그들에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마니산에 지천으로 자생하는 소사나무 한 그루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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