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대빈창 2021. 10. 25. 07:00

 

천연기념물 제78호 강화江華 갑곶리甲串里 탱자나무를 접견하려 길을 나섰다. 〈강화역사관〉 경내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를 대한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른 시간인 지 넓은 주차장에 차가 드문드문 서있었다. 매표소로 다가섰다. 「2021. 7. 1.부터 입장료 무료」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왼편 석축 위에 잘 손질된 나무 울타리가 둘러 싼 건물은 〈강화전쟁박물관〉이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오른편은 조선시대 자연보호 표석인 금표를 비롯한 67기의 〈강화 비석군〉이  도열했다. 20년 전 강화도 답사 때 강화대교 옆 산비탈에 늘어섰던 비석들이었다.

경내는 벽돌과 돌계단으로 포장되어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돌아볼 수 있었다. 흰 구름이 푸른 하늘아래 둥실둥실 떠있고, 멀리 이섭정利涉亭의 지붕이 보였다. 정자에 올라서면 염하鹽河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것이다. 사적 제306호 갑곶돈대甲串墩臺는 1866년 병인양요로 이 땅을 침탈한 프랑스군 600명과 전투를 치른 역사의 현장이었다. 금속활자중흥기념비와 포대가 공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피부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가 내세울만 한 공원이었다.

탱자나무는 1962. 12. 7.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4.2m, 뿌리근처 줄기 둘레는 2.21m 굵기였다.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되었다. 탱자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남부 이남에서 울타리용으로 심었다. 만주족이 세운 후금의 갑작스런 침략(정묘호란丁卯胡亂, 1627년)으로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피신했다. 외적 침입 방지용으로 강화외성의 토성 바깥쪽 벽에 탱자나무를 줄지어 심었다. 줄기와 가지를 억센 가시로 무장한 탱자나무를 방책으로 삼았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탱자나무가 소금기 묻은 바닷바람이 휘몰아치는 강화도에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탱자나무는 하나 둘 시들다 죽었다. 400년의 세월이 흘렀고, 겨우 두 그루만이 살아남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갑곶리, 사기리 탱자나무였다. 나라를 지키라는 호국의 명을 받아 추운 땅에서 살아남은 두 그루의 탱자나무가 생육 북방한계선을 긋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탱자나무 천연기념물은 세 그루였다. 2019년 경북 문경 〈문경聞慶 장수황씨長水黃氏 종택宗宅〉의 탱자나무가 천연기념물 제558호로 승격되었다. 황희 정승 후손 종택 안마당의 탱자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가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충남 천안의 천안향교 탱자나무는 수령 520년으로 전국 최고령을 자랑했다. 탱자나무로 유일하게 보호수였다.

동녘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탱자나무 열매가 황금처럼 빛났다. 탱자마다 신산스런 역사의 한이 옹글게 맺혔을 것이다. 나는 경내를 벗어나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고사 「귤화위지 橘化爲枳」를 떠올렸다. 제나라 재상 안영은 말했다. “귤나무가 회수의 남쪽에서는 귤을 맺지만, 회수의 북쪽에서는 탱자가 열린다.” 환경에 따라 사람도 사물도 변할 수 있음을 가리켰다. 갑곶리 탱자나무는 줄기가 부러지고 뜯겨진 채 고난의 400년 세월을 이겨냈다. 혹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황금빛 열매를 맺은 북방한계선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에 나는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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