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조선 청화백자靑華白磁의 회회청(回回靑, 코발트) 색이었다. 바다는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이었다. 참 물때를 지나 바닷물이 쓴 지 한시간여 흘렀다. 제방 석축의 물 자국으로 보아 오후 2시쯤이나 되었을 것이다. 푸른 하늘을 흰 구름이 점점이 수놓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바닷물은 미풍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물때는 조금에서 사리로 넘어가는 세물 때였다. 아랫집 할머니 말을 빌리자면 갯벌의 상합이 꾸어서라도 눈에 뜨인다는 물때였다.
2015년 발행된 『서도면지西島面誌』를 펼쳤다. 살곶이는 고려장 동남쪽에 길게 뻗은 지형이 험한 곶串이었다. 여기서 고려장은 조선시대 말을 기르던 마을이었다.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땅이름에 대한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지형이 ‘화살’처럼 좁고 길게 뻗어 이름을 얻은 것으로 나는 보았다. 섬사람들은 편하게 ‘살꾸지’라 불렀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3. 1. 살꾸지항이 개항했다. 화도 선수항과 주문도 살꾸지항의 도선시간은 35분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했다. 주문도 느리항에서 출항하여 아차도·볼음도를 경유하여 화도 선수항에 닿는 기존 노선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배시간이 짧아지자 나들길을 걷는 외지인들이 밀려들었다. 선수항에서 출항하는 첫배를 타고 주문도에 입도入島하여, 섬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살꾸지항의 저녁 막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주문도 느리항이 한산해졌다. 살꾸지항의 부대시설은 매표소가 유일했다. 차량 두 대의 이동매점이 공터에 꾸려졌다. 어쩔 수 없이 느리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가 없는 노인네들이었다. 젊은이들의 차편을 얻어 타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뭍에 외출하는 그들의 양손에 바리바리 짐이 들렸다.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신세를 지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 서해 작은 섬의 주민들은 차량 유무에 따라 이용하는 선창이 달라졌다.
서도西島 사람 사는 섬들의 좁은 바다를 빠져나갔던 옛 항로는 볼음도에서 석모도 어류정항 바다에 나서야 시야가 트였다. 살꾸지항은 먼바다로 바로 나설 수 있었다. 화도 선수항이 바다건너 2시 방향에 보였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가 강화도 최고봉 마니산이었다. 12시 방향의 산줄기는 석모도의 해명산에서 낙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었다. 어류정항이 1시 방향에서 바다로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바닷물이 석모도의 산줄기를 따라가는 방향으로 쓸어 내렸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도 사기리 탱자나무 (0) | 2021.11.01 |
---|---|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0) | 2021.10.25 |
선원김선생순의비仙源金先生殉義碑 (0) | 2021.09.29 |
말도의 가을 (0) | 2021.09.24 |
주문도 마트의 코코 (0) | 2021.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