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0

뒷집 새끼 고양이 - 43

재순이가 죽었구나! 뒷집 형수가 저녁 반찬으로 꽃게무침을 가져오면서 어머니께 소식을 전했다. 재순이가 쥐약을 먹었는지 텃밭 구석에서 다 죽어가고 있다고. 토하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뒤처리가 난감한 형수가 뒷일을 내께 부탁하는 것이라고. 그동안 뒷집 새끼 고양이들의 주검을 나는 봉구산 나무둥치에 묻어주었다. 내일 아침, 재순이를 아름드리 소나무에 수목장을 해야겠다. 형수는 한 달 만에 섬에 들어왔다. 대처 대학병원에 입원중인 형의 병수발로 집을 비우면서 고양이 건사를 부탁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에 나서면서 빌붙어 사는 길고양이 새끼까지 다섯 마리의 끼니를 챙겼다. 노순이, 노랑이, 흰순이는 광 안의 플라스틱 그릇에, 재순이와 길고양이는 시멘트 바닥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별명이 미련..

설송도雪松圖와 천이遷移

자연은 항상 변할 수밖에 없다. 천이遷移는 산림 생태계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숲으로 변화되는 현상을 가리켰다. 빈 땅에 한해살이풀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해살이풀이 뒤를 잇는다. 키 작은 나무 관목이 들어섰다. 키 큰 나무 침엽수 소나무가 정착했다. 척박한 땅에서 소나무는 잘 자랐다. 흙이 비옥해지고 활엽수 참나무류가 들어섰다. 서어나무는 활엽수림의 마지막 단계에 등장했다. 외부 교란이 없는 서어나무 숲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온대림의 극상림極相林이었다.올 겨울은 눈이 잦다. 아침 산책에서 만난 이미지였다. 봉구산자락 옛길은 흔들거리며 출렁이며 대빈창 해변을 향했다. 길가 위아래로 밭들이 산자락을 깊숙이 베어 먹었다. 외딴섬 초기 정착민들의 여유인지 모르겠다. 옛길이 휘돌아가..

박새를 아시나요

텃새: 참새, 노랑턱멧새, 종다리, 박새, 오목눈이, 곤줄박이, 동고비, 까치, 직박구리, 멧비둘기, 딱따구리, 흰뺨검둥오리, 소쩍새, 매, 괭이갈매기, 방울새, 까마귀, 딱새. 철새: 뻐꾸기, 중대백로, 물총새, 파랑새, 제비, 휘파람새, 찌르레기, 황로, 노랑부리백로, 후투티, 두루미, 청둥오리, 기러기, 가마우지, 검은머리물떼새, 도요새.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서 내가 마주치거나 울음소리를 들은 새 목록이다. 텃새의 소쩍새, 철새의 뻐꾸기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산책을 하면서 녀석들과 마주쳤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의문은 이 땅의 흔한 새인 꿩을 보지 못했다. 섬에 삶터를 꾸린 지 20여 년이 다 되었다. 꿩이 섬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인지. 내 눈에 뜨이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날씨..

뒷집 새끼 고양이 - 42

지난 해 연말 뒷집 형수는 남편 병수발로 열흘간 집을 비웠습니다. 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겼습니다. 대빈창 바위벼랑을 반환점으로 돌아오는 산책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날이 궂지 않으면 밥을 먹고 하루 세 번 빼놓지 않고 등산화를 발에 꿰었습니다. 고양이들의 식사는 아침, 저녁 하루 두 번입니다. 산책을 나가면서 딸기포장용 플라스틱 그릇에 사료를 부어 주었습니다. 노순이, 노랑이, 흰순이는 저온저장고 입구 허드레 창고에, 재순이는 바깥 바닥이 식사 장소입니다. 별명이 미련한 놈인 재순이의 식탐을 피하기 위한 상차림이었습니다. 분홍빛이 섞인 도둑고양이 새끼가 언젠가부터 빌붙어 살았습니다.생명달린 짐승에게 모질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한쪽 눈이 애꾸에 가까웠던 녀석이 살이 포동포동 올랐..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다.

서해의 작은 섬 주문도 일출 시각, 10분전 살꾸지항에 도착했다. 기온은 0℃다. 물때는 11물로 만조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임인년壬寅年에 살꾸지항에서 처음 해돋이를 맞았다. 계묘년癸卯年은 큰 형의 죽음으로 객선에서 마니산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다. 날씨가 흐리겠다는 일기예보가 떴다. 선창에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홀로 해맞이를 했다. 이미지는 일출시각, 7시 50분이다. 하늘을 온통 덮었던 검은 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탁한 기운이 두껍게 쌓였다. 바다는 잔잔했다. 살꾸지가 화살촉처럼 뻗어나갔고, 물방울처럼 한 점 떨어진 돌섬은 정수리만 남기고 물에 잠겨 들어갔다. 수시도 옆 등대가 아스라이 보였다. 검은 구름의 흩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틈새로 주황 기운이 얼비쳤다. 여객기가 ..

어머니, 걸음을 되찾으시다.

어머니가 보조기구 도움 없이 홀로 걸음을 걸은 지 한 달이 되었다. 이미지는 먼동이 터오기 전 이른 시각. 부엌에서 마루를 거쳐 안방으로 걸음을 옮기는 어머니의 뒷모습이다.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당신 방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되돌왔다. 신통방통했다. 따뜻한 초겨울 날씨가 계속되었다. 추위를 재촉하는 강풍이 일었고, 카페리호는 전날 저녁부터 결항이었다. 내가 습관이 된 낮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어머니가 부엌 식탁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막내야, 이제 걸음이 걸어지는구나. 그전에는 다리는 그대로 있고, 머리가 먼저 나가 넘어지더니, 다리가 제대로 떼어지는구나.” 그날 당신은 워커에서 해방되었다. 어머니는 한 달이 지나면 우리 나이로 아흔둘 이었다. 나는 워커를 접어 작은방에 갈무리했다. ..

뒷집 새끼 고양이 - 41

차안 조수석 발치에서 흰순이가 겁먹은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열흘 전, 아침 7:30분 주문도 느리항을 출항한 삼보12호에 승선했다. 중성화수술을 받으러 읍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흰순이의 어미 노순이는 무려 열 배를 출산했다. 흰순이가 마지막으로 태어났다. 차편이 없는 뒷집 형수는 흰순이의 수술을 나에게 부탁했다. 이른 새벽, 사료를 놔주는 저온저장고 입구 간이창고에 들어서자 노랑이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뒤따라오는 흰순이를 붙잡아 전날 준비한, 직접 만든 포획틀에 가두었다. 7개월 만에 자유를 잃은 새끼 고양이는 공처럼 위로 튀어 올랐다. 갇힌 흰순이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9시30분이 지나서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오랜만의 뭍 외출이었다. 이일저일 치르고 11시에 흰순이를 보았다. 녀석은 눈을 ..

무자치를 만났다.

바야흐로 절기는 밤에 기온이 떨어져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계절 상강霜降을 지나, 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을 하는 입동立冬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침 산책은 점퍼를 거칠 정도로 날이 쌀쌀해졌다. 서해의 작은 외딴 섬은 해양성기후로 일교차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대빈창 해변 바위벼랑 반환점을 돌아 해송 숲을 빠져나와 봉구산정을 바라보며 옛길에 올랐다. 사흘 연속 눈에 띄었다. 밤새 기온이 많이 내려가 녀석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몸을 덥히고 있었다. 나는 발을 굴러 길가 풀숲으로 쫓았다. 녀석은 귀찮다는 듯이 서서히 몸을 미끄러뜨렸다. 뜸한 차량 통행이지만 녀석을 구해주고 싶었다. 표준어로 무자치, 흔히 물뱀으로 불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김포에서는 ‘무사추리’였다. 어릴 적 학교가 ..

묵정논

들판 한가운데 / 몇 년 동안 묵은 논이 붐비기 시작했다 / 사람 손길이 끊기고 잡초 무성한 묵정논이 되었다고 모두들 혀를 찼는데 / 어느새 뭇 생명들의 피난처가 되어 있었다 / 온갖 농약의 융단폭격을 피해 숨어드는 / 들판의 유일한 방공호였다 / 일 년 내내 붐볐다 / 처음엔 작은 날벌레들이 잉잉거렸고 / 나중엔 너구리와 고라니가 뛰고 굴을 팠다 / 능수버들이 우거지고 / 백로와 왜가리가 둥지를 틀었다 / 으슥한 밤 은밀하게 꿈틀거리는 것들, / 교미하는 무자치 박새 물오리의 빛나는 몸과 젖은 눈을 훔쳐봤다 / 방공호에서 몸을 섞는 것들은 슬펐다 / 맹꽁이가 알을 슬고 꽃가루가 날렸다 / 장마 끝에 온갖 벌레와 곤충이 울었고 처음 보는 꽃들이 은하수처럼 무더기무더기로 흘러갔다 / 사라졌던 것들이 짝을 ..

섬냥이들

감나무집 ‘나비’의 출신은 대빈창 해변 길고양이입니다. 녀석은 4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3년 전 여름 방학 때, 감나무집 손자들이 할머니 집에 다니러 왔습니다. 해변에 놀러 나갔다가 ‘나비’를 품에 안고 돌아왔습니다. ‘나비’는 배를 곯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감나무집 형수를 하루 종일 쫓아 다녔습니다. 먹이를 챙겨주는 은인에 대한 녀석의 정 표현이겠지요. 나비는 어릴 적 배고픔을 잊지 않았는지 길고양이 한 마리를 챙겼습니다. 형수는 ‘나비’를 바보고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릇에 먹을 것을 채워주면 녀석은 길고양이가 먹고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뒷집 형수는 집을 비우면서 고양이들의 끼니를 부탁했습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가면서 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겼습니다.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다섯 마리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