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뒷집 새끼 고양이 - 43

대빈창 2024. 2. 6. 07:30

재순이가 죽었구나! 뒷집 형수가 저녁 반찬으로 꽃게무침을 가져오면서 어머니께 소식을 전했다. 재순이가 쥐약을 먹었는지 텃밭 구석에서 다 죽어가고 있다고. 토하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뒤처리가 난감한 형수가 뒷일을 내께 부탁하는 것이라고. 그동안 뒷집 새끼 고양이들의 주검을 나는 봉구산 나무둥치에 묻어주었다. 내일 아침, 재순이를 아름드리 소나무에 수목장을 해야겠다.

형수는 한 달 만에 섬에 들어왔다. 대처 대학병원에 입원중인 형의 병수발로 집을 비우면서 고양이 건사를 부탁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에 나서면서 빌붙어 사는 길고양이 새끼까지 다섯 마리의 끼니를 챙겼다. 노순이, 노랑이, 흰순이는 광 안의 플라스틱 그릇에, 재순이와 길고양이는 시멘트 바닥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별명이 미련한 놈인 재순이의 식탐을 피하기 위한 잔꾀였다. 재순이는 길고양이 새끼에게 해꼬지는커녕 사료를 양보했다.

재순이를 처음 만난 때가 2016. 7.이었다. 산책을 나서는데 예쁜 새끼고양이 남매가 뒷집 뒤울안에서 놀고 있었다. 녀석들은 내가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잎이 무성한 배나무 줄기에 두 놈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녀석들의 이름을 지었다. 오빠 잿빛 털색을 재순이로, 누이 노란 털색을 노순이로. 벌써 햇수로 9년이 흘러갔다. 노순이는 열배 새끼를 보고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재순이는 여전히 동네를 돌아다니며 싸움박질로 밤을 새웠다.

재순이는 밥때를 제대로 찾아먹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녀석은 섬 곳곳을 싸돌아다녔다. 요즘은 조폭고양이와 목숨 건 싸움을 벌이는 모양이었다. 녀석의 한쪽 눈은 반쯤 감겼고, 다른 눈 위 이마는 털이 한 움큼 뽑혀 맨살이 드러났다. 거기다 앞발 한쪽을 심하게 절었다. 그 몸으로 온 동네를 누비다가, 배가 고프면 우리집에 나타나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졸랐다. 재순이에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나는 녀석의 마지막이 서글펐다. 녀석은 죽으려고 자기집을 찾아 들었다. 다음날 아침,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빗방울마저 흩날려 날이 몹시 궂었다.

텃밭 창고에서 삽을 들고 뒷집 텃밭으로 향했다. 닭장 주변을 살폈으나 재순이가 보이지 않았다. 형수께 물어보니 어제 저녁 텃밭 가장자리 잡동사니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녀석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형수는 오후배로 섬을 떠났다.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지자 빗방울이 진눈깨비로 변했다.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재순이의 주검을 다시 찾았다. 방치된 수로용 나선형 주름관이 눈에 들어왔다. 손전등 불빛을 비추자, 재순이가 두 번 야~ ~옹 울부짖었다. 녀석의 굵은 울음소리에 죽음의 그림자는 없었다. 재순이는 차광막이 어지럽게 널린 통 안에서 자가치료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p.s 6일 저녁,사료를 담은 그릇을 재순이의 턱밑에 놓았다. 녀석은 허겁지겁 입을 댔다. 다음날 새벽 잠결에 재순이의 조르는 소리를 들었다. 녀석은 부엌 샛문밖에서 너댓번 서글픈 울음소리를 삼켰다.  날이 밝아왔고, 통안을 살펴보니 재순이가 사라졌다. 식탐이 유달리 강한 녀석이 사료 몇 알을 입에 대었을 뿐이다. 이후 녀석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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