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뒷집 새끼 고양이 - 42

대빈창 2024. 1. 3. 07:30

지난 해 연말 뒷집 형수는 남편 병수발로 열흘간 집을 비웠습니다. 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겼습니다. 대빈창 바위벼랑을 반환점으로 돌아오는 산책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날이 궂지 않으면 밥을 먹고 하루 세 번 빼놓지 않고 등산화를 발에 꿰었습니다. 고양이들의 식사는 아침, 저녁 하루 두 번입니다. 산책을 나가면서 딸기포장용 플라스틱 그릇에 사료를 부어 주었습니다. 노순이, 노랑이, 흰순이는 저온저장고 입구 허드레 창고에, 재순이는 바깥 바닥이 식사 장소입니다. 별명이 미련한 놈인 재순이의 식탐을 피하기 위한 상차림이었습니다. 분홍빛이 섞인 도둑고양이 새끼가 언젠가부터 빌붙어 살았습니다.

생명달린 짐승에게 모질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한쪽 눈이 애꾸에 가까웠던 녀석이 살이 포동포동 올랐습니다. 녀석까지 고양이 식구는 다섯 마리입니다. 산책에서 돌아오며 창고 문을 열어주면 녀석들은 부리나케 우리집 봉당으로 뛰어왔습니다. 아궁이 불을 때며 방화용 물로 떠다놓은 냄비에 코를 박았습니다. 계묘년 크리스마스는 화이트였습니다. 아침을 먹고 현관문을 밀치니 고양이 다섯 마리가 모두 나의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녀석들의 끼니를 챙기고 넉가래를 집어 들었습니다. 산책을 나가면서 창고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뒤를 따르던 흰순이가 이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노랑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따라왔습니다. 지난 겨울비가 그친 아침 산책에서 봉수산 옛길 외딴집까지 따라왔던 녀석이, 오늘은 무슨 생각인지 대빈창 캠핑장까지 쫓아왔습니다.

대빈창 해변 솔숲은 고양이 세계의 할렘가였습니다. 세상의 쓴맛에 이골이 난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노랑이는 호기심이 유달리 많았습니다. 그새 눈 밖으로 벗어나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내처 반환점 바위벼랑을 향해 빨리 걸었습니다. 대빈창 조폭 고양이들에게 해꼬지나 당하지는 않았을까, 돌아오면서 노랑이가 은근히 걱정되었습니다. 흰 눈에 덮인 제방길 멀리 뭉텅이가 보였습니다. 뛰다시피 걸음을 재촉하니 예상대로 노랑이였습니다. 녀석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랑이가 대빈창 떨거지들한테 당한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는 말그대로 기우였습니다.

노랑이는 어릴 적 암컷인 줄 알고, 읍내 동물병원에서 중성화수술을 시키면서 수컷으로 제대로 알았습니다. 녀석은 섬 내에서 유일하게 수술을 받은 수놈이 되었습니다. 노랑이는 자라면서 덩치가 부쩍 커졌습니다. 새끼시절, 내 방에 안고 오면 녀석은 영락없이 방구석에 똥오줌을 지렸습니다. 군말없이 치운 은공을 아는지 녀석은 나를 잘 따랐습니다. 노랑이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엄살이 심했고 추위를 잘 탔습니다. 뒷집 허드레 창고나 우리집 봉당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꺼렸습니다. 할 수없이 나는 녀석을 두 손으로 들어내 밖에 내놓았습다. 녀석은 불만을 입속으로 웅얼거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랑이가 자꾸 뒤처졌습니다. 발이 시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눈길에서 나를 기다리다 지친 것일까요. 녀석은 입으로 연신  웅~~ 웅 거리면서 끈질기게 나를 쫓아왔습니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노랑이가 나의 산책 동반자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