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안 조수석 발치에서 흰순이가 겁먹은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열흘 전, 아침 7:30분 주문도 느리항을 출항한 삼보12호에 승선했다. 중성화수술을 받으러 읍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흰순이의 어미 노순이는 무려 열 배를 출산했다. 흰순이가 마지막으로 태어났다. 차편이 없는 뒷집 형수는 흰순이의 수술을 나에게 부탁했다. 이른 새벽, 사료를 놔주는 저온저장고 입구 간이창고에 들어서자 노랑이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뒤따라오는 흰순이를 붙잡아 전날 준비한, 직접 만든 포획틀에 가두었다. 7개월 만에 자유를 잃은 새끼 고양이는 공처럼 위로 튀어 올랐다. 갇힌 흰순이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9시30분이 지나서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오랜만의 뭍 외출이었다. 이일저일 치르고 11시에 흰순이를 보았다. 녀석은 눈을 크게 뜬 채 포획틀에 길게 누워 있었다. 나는 마취가 덜 풀린 흰순이를 차에 싣고 조심스레 운전대를 잡았다.
어미 노순이를 따르는 흰순이의 이미지를 잡은 「뒷집 새끼고양이 - 40」에서 녀석의 장애를 안타까워했다. 흰순이는 햇살이 비추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거기다 벙어리처럼 소리를 내지 못했고, 귀머거리처럼 불러도 딴짓을 했다. 형수 말에 의하면 흰순이가 너무 순해서 내가 착각했다. 여름이었을까. 뒷집 형수가 우리집에 마실을 와서 새끼 고양이를 마루에 내려놓았다. 어미 노순이가 걱정스런 울음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달려왔다. 그때 흰순이가 마루에서 안방으로 달려가며 냐~~옹 냐~~옹 구슬프게 울었다. 어미를 찾는 새끼의 반응이었다. 그때 새끼고양이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저런 개떡 같은 어미 같으니라고”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노순이가 새끼를 떼어놓으려 구박하기 시작했다. 흰순이가 다가가면 노순이는 앞발로 모질게 콕콕 쥐어박았다. 어느 날 산책에서 돌아오다 눈에 뜨인 광경이었다. 짧은 겨울 햇살에 노순이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새끼는 어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엎어놓은 함지박에 웅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형수 말대로,
"독립시키려고"
노순이의 눈물어린 모성이였다. 어미는 새끼가 눈에 뜨이지 않으면 구슬프게 울었다. 아침저녁 산책을 나서며 딸기포장 플라스틱 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노랑이, 흰순이, 노순이가 차례로 코를 박았다. 돌아오는 길에 광문을 열고 고양이들을 밖으로 풀어주었다, 녀석들은 제각각 목을 축이려 길을 나섰다. 흰순이는 우리집 뒤울안으로 물을 마시러 달려왔다. 해가 짧은 계절이다. 아직 어둠의 장막이 짙게 드리워진 이른 시각. 등산화를 꿰차고 현관문을 밀면 흰 공같은 흰순이가 웅크린 채 나를 기다렸다. 녀석은 문턱에 앉아있다 자기 집을 향해 뛰어갔다.
오후 3시20분 주문도 살꾸지행 삼보6호를 타고 섬에 들어왔다. 나도 힘들고 흰순이도 힘든 하루였다. 돌아오는 배안에서 마취가 풀렸는지 녀석이 꼼지락거렸다. 녀석은 내가 흰순아~~ 라고 부르면 입만 벙긋했다. 순하기 그지없는 새끼고양이였다. 바깥날이 추워지고 있었다. 나는 흰순이가 안쓰러워 우리집 봉당에서 묵으라고 가두었다.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보일러실과 마주해 훈훈할 것이다. 어미 노순이는 열 배를 낳고 중성화 수술을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태어난 흰순이에게 가장 정이 많이 갔다. 이제 녀석은 세상의 빛을 본지 7개월이 되었다. 흰순이가 하늘이 부여한 생을 온전하게 무탈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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