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어머니, 걸음을 되찾으시다.

대빈창 2023. 12. 4. 07:30

 

어머니가 보조기구 도움 없이 홀로 걸음을 걸은 지 한 달이 되었다. 이미지는 먼동이 터오기 전 이른 시각. 부엌에서 마루를 거쳐 안방으로 걸음을 옮기는 어머니의 뒷모습이다.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당신 방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되돌왔다. 신통방통했다. 따뜻한 초겨울 날씨가 계속되었다. 추위를 재촉하는 강풍이 일었고, 카페리호는 전날 저녁부터 결항이었다. 내가 습관이 된 낮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어머니가 부엌 식탁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막내야, 이제 걸음이 걸어지는구나. 그전에는 다리는 그대로 있고, 머리가 먼저 나가 넘어지더니, 다리가 제대로 떼어지는구나.”

 

그날 당신은 워커에서 해방되었다. 어머니는 한 달이 지나면 우리 나이로 아흔둘 이었다. 나는 워커를 접어 작은방에 갈무리했다. 정확히 1년 전, 어머니는 다리가 굳어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위성도시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MRI를 찍었지만 뼈와 근육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피검사 결과 혈소판 감소가 나타났다. 감염내과 진단은 진드기 감염에 의한 쯔쯔가무시를 의심했다. 5일을 입원하고 어머니는 퇴원했다. 실내에서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다. 6개월이 지났고, 어머니는 다시 쓰러졌다. 나는 다시 응급실로 뛰어갔다. MRI 판독결과 뼈와 근육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새벽 응급실에서 나와 인천 작은형네서 하루를 묵고, 다시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정형외과 약을 타왔다.

어머니는 섬에 돌아와 실내에서 워커에 의지했다. 허리를 90도 굽혔고,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디뎠다. 힘든 몸으로 어머니는 실외에서 보행보조기로 걸음을 옮겼다. 감나무집과 뒷집 고추 손질을 여름 내내 도왔다. 남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는 당신의 인성은 누구보다 훌륭했다. 걸음 한 발짝 떼어놓기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웠다. 이웃집 일을 도와주고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가 넘어질까 나는 당신의 어깨를 부축했다. 그렇게 힘든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한 점의 그림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힘들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네가 상체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파킨슨 초기증상이었다. 나는 신경과를 노크했다. 어머니는 늙어서 그렇다고 돈쓰지 말라고 병원가기를 꺼려했다. 영상의학과의 MRI 결과, 뇌동맥류가 나타났다. 신경외과 진료는 어머니의 연세가 많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핵의학과의 PCT-CT 결과, 파킨슨 진단이 떨어졌다. 파킨슨 치료제는 독했다. 어머니는 소화불량을 호소했다. 약을 바꾸고, 용량을 조절한 지 한달보름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일 년 만에 걸음을 되찾았다. 당신은 바깥나들이에서 보행보조기를 그대로 이용했다.

어머니의 어지럼증 증상도 가셨다. 어머니는 간헐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어지러워 움직이지 못했다. 급처방으로 받은 보건지소의 알약 두 알을 삼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가위 눌림도 사라졌다. 나는 이틀이 멀다하고 악몽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몇 년 전 정신건강과의 진찰을 받고 약까지 타왔다. 애를 태웠던 변비도 사라졌다. 함초환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요실금 증상도 완화됐다. 걸음을 걸으시면서 비뇨기과 약을 다시 드셨다. 모든 것이 좋아졌다. 어머니가 기력을 되찾았다.

 

“너무 오래 사는 것 같아 막내에게 미안하구나.” 

 

어머니가 엷은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당신의 삶의 질은 고양되었고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어머니는 꿈도 꾸지 않고 단잠을 잤다. 모두 오진이었다. 정신건강과, 정형외과, 감염내과 등등. 정답은 파킨슨 병이었다. 어머니는 남은 생을 편하게 사실 것이다. 요즘 나의 기분은 날아오를 지경이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솟은 이상처럼. 병원으로 향하면서 강화도 특산품 6년근인삼 한 차를 구입했다. 어머니를 1년 만에 걷게 해준 젊은 의사선생께 드릴 작은 성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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